정부,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 발표

앞으로 직장인의 퇴직금이 퇴직연금으로 일원화 되게 됐다.

정부는 지난 8월 27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확정·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오는 2016년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인 기업부터 시작해 2022년까지 모든 기업은 의무적으로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또 기한 내에 가입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고 30인 이하 기업을 대상으로 가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중기퇴직연금기금제도를 도입, 가입 기업에 대해 3년간 한시적으로 재정지원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근속기간 1년 미만 근로자도 일정기간 이상 근무시 퇴직급여 가입대상에 포함시키며 근로자의 퇴직연금 납입액에 대한 별도의 세액공제 한도를 신설한다.

정부 측은 “노인빈곤율이 48.5%로 OECD 최고 수준인 가운데, 국민의 노후준비 수준, 인식 등도 미흡한 상황에서 근로계층의 노인부양 부담이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라며 “노후소득 보장에 충분하지 않은 공적연금을 보완하기 위해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파산해도 안전
퇴직연금이란 근로자의 노후 소득 보장과 생활 안정을 위해 근로자 재직 기간 중 기업주가 퇴직금을 외부 금융회사에 적립하고, 이를 기업 또는 근로자의 지시에 따라 운용해 근로자가 퇴직할 때 연금 또는 일시금의 형태로 지급하도록 한 기업 복지제도를 말한다. 기존의 퇴직금은 기업에서 퇴직금을 보유, 기업이 도산하게 되면 근로자들은 퇴직금을 받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그러나 퇴직연금은 외부 금융회사에 적립되기 때문에 기업에 문제가 발생해도 비교적 손쉽게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것은 지난 2005년이지만 퇴직금과 퇴직연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함에 따라 퇴직연금제도가 활성화 되는데 실패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6월 현재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은 전체의 15.55%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사적연금 도입률이 76%에 달하지만, 근로자 10인 미만 사업장의 사적연금 도입률은 11%에 그치고 있으며 퇴직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기업 가운데에는 경영사정으로 인해 사내에 퇴직금을 적립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퇴직금 체불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2013년말 현재 체불임금 총액 1조1930억원 중 퇴직금 체불은 4571억원으로 38.32%에 달했다.

퇴직연금을 의무화 돼도 기업의 퇴직연금 적립과 운용이 의무화될 뿐 근로자는 55세 이후에 일시금과 연금 중 자신이 원하는 방법을 선택하여 수령할 수 있다.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할 때의 세금부담 역시 기존 퇴직금 수령시와 동일하며 55세 이전에는 퇴직연금 담보대출상품을 활용할 수 있다. 또 부득이한 사유가 발생할 때는 3~5%의 낮은 세율로 중도 인출도 가능하다.

퇴직연금에는 확정급여형(DB· Defined Benefit), 확정기여형(DC·Defined Contribution), 개인형퇴직연금(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등 세가지가 있다. 확정급여형은 사전에 확정된 퇴직연금을 받는 방식으로 운용 수익과 상관없이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 확정기여형은 실적에 따라 수령액의 변동이 있는 퇴직연금으로 임금상승률보다 운용수익률이 높으면 유리하다. IRP는 근로자가 이직이나 퇴직을 하면서 받은 퇴직금을 자기 명의의 퇴직 계좌에 적립해 연금 등 노후 자금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현재 퇴직연금은 예금, 적금 등 다른 금융 상품의 잔액 규모와 합산해 5000만원까지만 보호되지만 정부는 퇴직연금 수급권 강화를 목적으로 예금자보호법 시행령을 개정, 다른 금융 상품과 구분해 퇴직연금만 별도로 개인당 5000만원까지 예금 보호 한도를 적용할 예정이다.

노후 수입 대안 vs 금융시장 활성화
정부의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환영했다.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실장은 “퇴직연금은 가장 강력한 노후소득 보장 수단”이라며 “퇴직금을 떼일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운용해 소득대체율을 올릴 수단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또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 금교육포럼 대표는 “선진 연금사회로 발전해 가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직장인의 60%가 국민연금 외에 다른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현역시절 수입을 노후대비 자금으로 쌓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정부의 대책이 증시 부양책의 일환이거나 ‘금융시장 활성화 대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권능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은 “정부의 목적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노후 소득을 보장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시장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며 “안정성이 확실하게 담보돼야 함에도 정부 대책은 안전장치들을 대거 제거하고 ‘고수익 고위험’의 투자를 용인하고 부추기는 방향으로 설계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 측은 “퇴직연금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가지 보완장치를 마련했다”며 “총 위험자산 보유 한도는 70%로 유지하고, 파생상품은 투자를 금지하고 실물자산은 펀드로만 가능하게 하는 등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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