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연의 경제 이야기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Sulawesi) 섬 또는 셀레베스(Celebes) 섬 주민들은 독특한 방법으로 원숭이를 사로잡아 관광객들에게 판다고 한다. 술라웨시 섬에는 길고 단단한 호박이 잘 자라는데, 아이들은 그 호박이 작을 때 중간 부분을 끈으로 묶어 한쪽은 계속 성장하게 두고  다른 한쪽은 자라지 못하도록 한다고 한다. 호박이 단단해지면 그 속을 다 파내고 목이 좁은 유리병처럼 만든다. 아이들은 그 호박을 나무기둥에 꽁꽁 묶어 두고 그 속에 쌀을 반쯤 채워놓는다. 그러면 쌀을 좋아하는 원숭이들이 쌀 냄새를 맡고 호박 근처로 모여든다. 그 중 한 놈이 주위를 살펴보고는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호박 속으로 손을 넣어 쌀을 한 줌 움켜잡는다. 그런데 쌀을 움켜쥔 채로 손을 빼려하면 손이 나오지를 않는다. 손을 집어넣을 때는 빈손이라 잘 들어갔지만 쌀을 움켜쥔 주먹은 나오지를 않기 때문이다.

원숭이는 손을 빼려고 애를 쓰지만 손이 빠지지를 않는다. 쌀을 움켜쥔 손을 펴버리면 쉽게 나올 텐데 원숭이는 결코 주먹을 펴지 않는 것이다. 원숭이가 손을 빼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대나무로 엮은 통을 가지고 와서 원숭이를 그 속에 집어넣는다. 그런데 자신이 잡힌 통 속에서도 원숭이는 여전히 쌀을 움켜잡은 주먹을 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연구목적으로 원숭이를 사로잡기 위해서도 이 방법을 쓴다고 한다. 원숭이는 나무 위에 있기 때문에 마취 총을 쏘아 떨어뜨리면 죽을 위험이 있어 원주민들이 썼던 전통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다.

고목나무에 원숭이 손이 겨우 들어갈 만큼의 구멍을 파고, 원숭이들이 나무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그 속에 쌀을 넣어 두면, 사람이 떠난 다음 나무에서 내려와 쌀을 꺼내기 위해 나무구멍 속에 손을 넣어 쌀을 한줌 움켜쥐고는 손을 빼려 하나 나오지를 않는 것이다. 이때 대나무로 만든 통으로 원숭이를 사로잡는 것이다. 원숭이를 잡기 위해 다가가면 달아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주먹을 펴지 않기 때문에 결국 사로잡히고 만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교훈을 준다. 무언가를 손에 틀어쥐고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 결국은 더 큰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원숭이처럼 자유를 잃어버리고 남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 주먹에 쥐고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사람마다, 그리고 처해 있는 상항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돈, 권력, 지위, 감투, 명예, 체면, 승진, 인기, 연인 등이 대표적인 대상일 것이다. 이런 것들에 집착하다 큰 낭패를 당하는 사례를 우리는 다반사로 목도하고 있다.

놓지 않으면 더 큰 것을 잃게 된다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는 말이 있다. 성급하게 성과를 내려하면 오히려 이루지 못한다는 말로 논어에 있는 말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노나라의 중요한 도시였던 거보의 읍재(邑宰)가 되자, 스승인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여쭤봤다. 그러자 공자는 “신속하게 성과를 내려고 하지 말라(無欲速). 또 작은 이익을 바라지 말라(無見小利). 신속하게 성과를 내려 하면 오히려 이루지 못할 것이요(欲速則不達), 작은 이익을 바라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見小利則大事不成)”고 조언한다.

공자의 이 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바로 ‘속히 성과를 내려고 하면 오히려 이루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바라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이다. 욕속(欲速), 즉 속히 성과를 내려고 덤비는 것은 무모한 욕심 때문이며 순리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 욕속의 좋은 예가 발묘조장(拔苗助長)이다. 발묘조장은 맹자(孟子)에 있는 이야기로, 송나라 사람이 자기가 심은 모가 빨리 자라지 않아 걱정해 뽑아놓고서, 지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 식구들에게 ‘오늘 내가 피곤하구나. 나는 모가 빨리 자라도록 도와주었다’라고 말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달려가서 보니 모가 말라 있었다.

자연에는 순리(順理)라는 게 있다. 순리란 결에 순응한다는 뜻이다. 나무에 대패질을 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순리란 나뭇결에 맞게 대패질을 하는 것이고, 역리(逆理)란 나뭇결을 거슬러서 대패질을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의 대패질이 매끄럽게 잘 되겠는가? 물론 순리대로 할 때이다. 욕속은 곧 역리이고 발묘조장과 다름없다.
옛날 어떤 사람이 이웃집이 3층으로 짓는 것이 좋아 보여 목수에게 자기도 3층집을 지어달라고 했다. 목수가 승낙하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인이 보니 1층부터 짓는 게 아닌가! 주인은 목수에게 소리 질렀다. “나는 1층이 필요한 게 아니라 3층이 필요하단 말이요! 1층은 짖지 말고 3층만 지으시오!” 그러자 목수가 말했다. “3층을 지으려면 1층부터 지어야만 합니다.” 주인이 말했다. “글쎄 나는 1층은 필요 없고 3층만 필요하단 말이오!”

최근 고위 공직자 후보들의 청문회에서 호된 질책을 당하거나 낙마하는 경우를 보면 위의 이야기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네시아 원숭이처럼 무언가 작은 것을 잡고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 과거에 취한 소리(小利)가 큰 걸림돌이 되는 사람, 1층과 2층, 즉 바탕은 부실하게 해놓고 3층집만 높이 지으려고 발버둥 쳤던 사람들은 곤욕을 치르거나 낙마하고 말았다.

이러한 논리는 고위 공직자 후보들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작은 것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하면 큰 것을 잃게 되고, 빨리 자라라고 모를 뽑아놓은 송나라 사람처럼 속히 성과를 내려고 덤비다 보면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또 작은 이익에 집착하다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하고, 기초가 부실하면 높은 집을 지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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