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들어설 때면 으레 단골처럼 나오는 단어가 있다. ‘낙하산 인사’가 바로 그것이다. ‘낙하산 인사’의 사전적 의미는 채용이나 승진 따위의 인사에서, 배후의 높은 사람의 은밀한 지원이나 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 된다.
요즘 다단계업계가 때 아닌 ‘낙하산’ 때문에 술렁이고 있다. 경찰이 사상 처음으로 ‘낙하산 인사’에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 형사 처벌키로 했기 때문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특판조합) 임원추천위원 6명 정도가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간부에게서 공정위 출신 인사를 이사장으로 선출하라는 구체적 압박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이 사건의 배경에 다단계 관련 인사의 음해성 민원에 경찰이 휘둘렸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은 ‘직접판매공제조합’과 함께 다단계판매 관련 소비자 피해보상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일각에서는 시장규모에 비해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한 업종에 두 개의 기관이 존립하는 기이한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사건과 묘하게 오버랩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들 두 개 공제조합의 감독권을 갖고 있는 곳이 공정위다. 이렇듯 공정위가 감독권을 틀어쥐고 있는 직·특판조합의 이사장 자리를 지금까지 사실상 공정위 출신이 독점해왔다. 두 조합은 2002년 설립 이후 11명의 이사장 가운데 초대이사장 2명을 제외한 9명의 전·현직 이사장이 모두 공정위 출신으로 전 부위원장 1명, 조정위원장 1명, 전 상임위원 5명, 전 공보관 1명, 본부국장 1명 등이다. 초대 이사장 2명은 당시 다단계 업계의 최대 출자사인 정생균 제이유대표이사와 박세준 한국암웨이대표이사 단 두 명뿐이다. 누가 봐도 냄새가 날 수 밖에 없다. 왜 초대 이사장은 조합원이 되고 그 다음부터는 안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 없이 지금까지 온 것이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 온 것이다.
이번 사안은 낙하산을 투하한 곳이 다른 곳도 아닌 공정위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낙하산 같은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고 단속해야 할 공정위가 스스로 불공정 행위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단체들이 ‘공정하지 않은 공정위’에 대해 “너나 잘하세요”하고 조소하지 않을까. 직·특판조합이 다단계회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서 조합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까지 침해받는다면 굳이 조합이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들의 피땀 어린 돈으로 운영되는 조합사들은 허수아비일 뿐이다.
다단계업계의 직·특판공제조합은 조합원들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고 합당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부조리 없이 낮은 자세로 투명해야하며 조합사들 위에서 군림해서도 안 되며 그들이 그렇게 느끼게 해도 안 된다. 공제조합의 주인은 분명 조합사들이기 때문이다. 다단계 업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대체로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빌미로 낙하산을 투하했다면 분명 정당화 될 수 없으며 충분히 의심을 받고 남음이 있다. 다단계업계가 안고 있는 문제가 업계의 자정노력으로 개선될 수 없다면 공정위같은 국가기관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데 어느 누구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다단계업계가 주최가 되어 ‘관행’이라는 스스로의 족쇄를 용기 있게 풀고 ‘잘못된 관행’을 깨는 ‘관행’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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