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원 숲길’

처서가 지나니 새벽 공기가 제법 선선하다. 하지만 낮 동안에는 습한 찜통더위가 심술을 부리듯 있는 힘껏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맑고 푸른 숲의 공기가 그리웠던 우리는 문화 테마 코스로 잡은 과천현대미술관과 상쾌한 기분으로 걷기를 할 수 있는 서울대공원 삼림욕장으로 향했다.


삼림욕을 즐기며 걷는 짙푸른 대공원 숲길
청계산 북서쪽 서울대공원 동물원을 에워싸고 있는 서울대공원 삼림욕장은 둘레길 코스의 하나로서, 길이는 7㎞ 정도이다.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에서 하차하면 서울대공원 입구가 나온다.

동물원 입구까지 코끼리 열차가 운행되고 있지만 우리는 아침의 시원한 바람과 과천저수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음미하기 위해 그냥 걷기로 했다. 동물원에 들어서자 우리를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홍학.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모델이 워킹하듯 우아한 발걸음을 옮긴다.  

다리를 건너 길을 따라가니 삼림욕장 안내판이 서 있는 출입구가 보인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언덕이 가파라 숨을 고르며 천천히 나무 계단을 올라야 했다. 하지만 숲 속 나무들이 내뿜어낸 피톤치드 향을 만끽하며 삼림욕을 즐기니 어느덧 고갯마루에 다다라 있다. 처음으로 맞이한 휴식 공간은 선녀 못이 있는 숲이다. 오래전에 마을 사람들이 낮에는 빨래를 하고 밤에는 목욕을 하던 곳이라 한다. 이곳에 자리를 잡으니 마치 목욕을 하는 예쁜 선녀들을 나무 뒤에 숨어 엿보던 나무꾼 심정이 된 듯하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다음 목적지로 걷다 보니 시원한 얼음골 숲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안내판의 권유에 따라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어 본다. 땀으로 범벅이 몸 속 깊은 곳까지 얼음골의 냉기가 전해지는 느낌이다. 어느덧 오늘 코스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점인 쉬어가는 숲에 이르러 차가운 약수로 목을 축이고 잠시 명상에 잠겨본다.

이어서 나타난 맨발로 걷는 구간에서는 부드러운 흙길을 살며시 밟으며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매미 소리 반주에 맞춰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 맞춰 물봉선들이 방긋방긋 웃고 있다. 이윽고 밤나무 숲에 다다라 맹수사 샛길로 발길을 돌려 내려오니 쭉쭉 뻗은 나무 아래 보랏빛 맥문동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여름 햇살 아래 꿀꽃들이 만개해 여기저기 산호랑나비들이 꿀을 찾아 헤맨다.           
       
작품과 자연이 함께 하는 과천현대미술관
동물원을 벗어나 미술관 입구로 들어서니 야외조각장이 있는 확 트인 푸른 정원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다.
정원 한가운데 서서 뭔가를 계속 중얼거리는 듯한 조각상은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아마도 관람객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인사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니 우리에겐 친숙한 백남준의 비디오탑 <다다익선>이 천장을 찌를 듯 우뚝 서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만든 작품으로 개천절인 10월 3일을 상징하는 1003대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원형으로 쌓아 완성한 비디오아트의 대작이다.

땀을 식히며 작품들을 천천히 둘러보고 다시 야외조각상들이 있는 정원으로 향한다. 푸른 초원으로 달려가고 싶어 안달이 난 붉은 적토마를 사진에 담고 파란 하늘과 잘 어우러진 여러 조각상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걷는다.

나무 그늘 밑 벤치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 아름답다.

이 모습을 보니 우리 아이들과 함께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지난 여름의 추억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진다. 야외정원에 있는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멀리 보이는 풍광을 감상하며 오늘 일정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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