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대상 입찰 ‘유찰’…반대여론 많아 ‘장기화 전망’

지난 13일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던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 2173㎡에 해당하는 매장면적을 DF6와 DF7, 2개 구역으로 나눠 실시한 입찰이 유찰됐다고 밝혔다. 앞선 지난 5일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입찰공고를 냈다. 하지만 가격입찰 실시 결과 단 한 개 업체만이 참가해 최종 유찰됐다. 이번 입찰이 유찰된 원인에 대해 업계에서는 7일에 불과한 입찰기간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중소·중견기업에 우선적으로 면세사업 참여기회를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7일에 불과한 입찰기간은 면세사업 운영경험이 없는 중소·중견기업이 충분한 사업타당성 검토를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은 기간이라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특히 한국관광공사는 이번 입찰은 애초부터 수많은 문제점을 지닌 매우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내용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찰이 당연한 결과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인천공항 면세점 유찰이 관심을 끈 것은 이번 입찰이 지금까지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해왔던 ‘면세점의 민영화’ 수순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면세점의 민영화의 몫은 결국 롯데와 신라 등 두 대기업 면세점의 시장 독점을 가능케 해 이후 가격담합 이루어지면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볼 것이란 우려가 존재하는 것이다.

현재 인천공항 면세점에서는 롯데가 주류와 담배를, 신라는 화장품과 향수를, 한국관광공사는 해외잡화와 토산품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면세점 건물주인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수의계약 방식으로 계약을 지속해 왔다. 그런데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내년 2월이 만기인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민간 사업자에게 면세점 자리를 내주겠다고 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이 같은 결정은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침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한국관광공사의 기능을 홍보, 마케팅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하고, 2008년부터 면세점의 민영화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한국관광공사 면세점이 대기업으로 넘어가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는 5조원 미만 중소기업에 넘겨줄 것을 공언하면서 이번 입찰이 이루어지게 됐다.

한편 한국관광공사는 유일한 수익사업인 면세사업권을 내놓는 상황이 되면서, 관광노조의 주도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 이번 ‘유찰’에 따라 인천공항 면세점 민영화를 둘러싼 갈등은 해를 넘겨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은 민영화 수순?

인천공항 면세점 민영화는 일단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방안의 일환으로 기획재정부가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가 여러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기존 방침대로 한국관광공사가 운영 중인 인천공항 면세점에 대한 입찰공고 강행했기 때문이다.

또 인천국제공항공사는 51개 상호출자제한 대기업 집단과 12개 공기업을 제외한 중소·중견기업에만 입찰 참가자격을 주는 제한경쟁 입찰방식으로 공고를 냈다. 업계에서는 이런 입찰방식은 기획재정부의 안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기획재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한국관광공사가 내년 2월 면세점 계약이 종료되면 면세점을 철수해야 하는 것이 계약자인 인천국제공항공사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업계는 이 같은 상황은 현 정부가 추진해온 ‘공기업 선진화 방침’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한국관광공사가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나가게 되는 것은 공기업 선진화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의 공기업 선진화와 관련 문서에는 한국관광공사의 선진화 방안도 언급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면세점 사업은 사업자별로 계약 기간을 고려해 2012년까지 단계적으로 중단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 한국관광공사의 면세점 철수를 정부의 선진화 방침 중 하나로 보는 이유다. 또 집행 기관인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한국관광공사의 면세점 사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면세점 민영화에 정부의 의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관광공사 노조 “면세점 입찰, 의혹 많다”

관광공사 노조는 지난 5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면세점 입찰공고를 낸 후 여러 의혹을 제기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우선 관광공사 노조는 7일간으로 예정된 입찰 기간은 사실상 중소기업의 참여를 배제한 것으로 봤다.

관광공사 노조 측은 “2007년과 달리 이번 입찰은 면세점 운영 경험이 없어도 참여할 수 있는 만큼 중소·중견기업들이 입찰조건과 사업타당성을 검토할 시간을 줘야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짧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2009년 중견업체였던 AK면세점이 2000억원의 부채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롯데면세점으로 지분이 넘어간 사례를 예로 들었다. 이번에 입찰에 성공해서 중소기업이 낙찰을 받아도 이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그 출발점이 촉박한 입찰기일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또 관광공사 노조는 2011년 기준으로 자산규모 5조원 미만 기업이라는 입찰 참가자격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자산이 5000억원 미만이어야 하고, 5000억~5조원은 대기업으로 분류된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시내 12개 면세점과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나머지 면세점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게만 입찰 자격을 주려고 한다”고 말했지만 입찰 참가자 자격이 자산 5조원 미만인 기업이라고 명기돼 자산규모 5000억원 이상인 대기업에 낙찰될 가능성을 키웠다는 설명이다.

중소기업의 진입을 어렵게 하는 임대료 책정도 문제라고 주장한다. 관광공사 노조에 따르면 이번 입찰에서 임대료 격인 최소 보장액은 DF6(면적 1022㎡) 238억원, DF7(면적 1151㎡)은 283억원이다. 두 사업권 공간을 합칠 경우 최소 보장액 합산액은 521억원이다. 최고가액을 써낸 업체에 낙찰되는 방식으로 2개 사업권을 따낸다면 낙찰 합산금액은 600억원 내외가 된다. 이는 중소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임대금액을 넘어선다는 것이 관광공사 노조의 주장이다. 또 낙찰을 받은 중소기업은 외산수입품에 비해 수익률이 낮은 국산품을 50% 이상 배치해야 하는 부담도 안게 된다.

취급품목 제한도 불공정 거래행위를 유발하는 문제점으로 봤다. 앞서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국토해양위 이윤석 의원(민주통합당)도 인천공항 면세점의 취급품목 제한조치로 인한 불공정 거래행위를 지적한 바 있다. 이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천공항면세점 내 롯데면세점이 주류, 담배를 독점판매하면서 인기 주류 30여개의 가격이 평균 9.8% 인상되고 소비자 부담이 커지는 등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그런데 이번 입찰대상 공간인 2174㎡ 안에서는 면세점 매출 상위 4개 품목인 향수, 화장품, 주류, 담배 판매가 금지돼 롯데와 신라 면세점은 이들 4개 인기품목을 계속 취급할 수 있게 된다. 새 사업자의 경우 기타 품목만을 취급하게 돼 매출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관광공사 노조는 또 입점 업체들에 대한 광고비 징수도 중소기업의 부담 증가를 유발한다는 측면에서 문제로 지적했다.

새 사업자는 최소 보장액의 1% 미만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에 공동마케팅비(광고비)를 내게 돼 있다. 현행 최소 보장액으로 계산하면 DF6의 경우 약 2억4000만원, DF7의 경우 약 2억8000만원 미만에 대해 인천국제공항공사에 공동마케팅비 명목으로 납부해야 한다. 흑자나 적자에 관계없이 납부하는 조건이다. 새 사업자로 낙찰되는 중소?중견기업도 계속 지급해야 한다.

 

면세점 사업자 ‘유찰’…장기화 전망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자 선정은 당분간 미뤄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유찰 원인은 관광노조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입찰 기간이 7일로 매우 짧아 중소기업들이 사업 타당성을 분석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또 최저 입찰가가 높고 매출이 높은 품목 화장품과 향수, 주류와 담배 등을 제외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제시된 것도 유찰의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인천공항 면세점 새 사업자 선정이 유찰된 것과 관련해 인천시민단체는 “면세점의 민영화 공고 이후 공항면세점 민영화 관련해 기획재정부와 문화관광부, 관세청 등 중앙부처 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급박하게 면세점 입찰을 강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관세전문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 관세전문가는 “이번 민영화 유찰은 입찰 과정에서 면세점 관리감독 기관인 관세청의 협의사항을 무시하는 등 공항공사의 졸속 추진의 폐해를 반증한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인천지역 국회의원들도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중소·중견기업에만 입찰참가 자격을 주겠다고 하면서 자산 5조원 미만 기업은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대기업을 위한 입찰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국회의 반대 의견은 인천지역 의원들에게만 한정 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천공항 면세점 새 사업자 선정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야 국회의원 24명은 지난 10월24일에 만장일치로 ‘한국관광공사면세점 지속 운영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을 제안한 이우현 의원(새누리당)은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면세 사업의 공익성 결여와 국산품 차별이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 한국관광공사 면세점을 매각한다는 것은 절대 납득할 수 없다. 국회 본회의에서 이번 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밝혔다.

인천공항 면세점 민영화 반대론이 시민단체는 물론 국회에서까지 뜨겁게 달아오른 배경에는 대기업의 면세점 장악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현재 국내 면세시장은 롯데와 신라가 양분하고 있는 사실상 독과점 시장이다. 롯데와 신라는 전체 면세점 시장의 80%, 전체 공항면세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두 기업이 면세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면세시장의 상징적인 곳인 인천공항 면세점에서는 한국관광공사라는 공기업과 경쟁을 하고 있다. 두 기업의 입맛대로 운영하기 어려운 것이다.

현재 인천공항 면세점은 대한민국 면세시장에서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이 가장 크다. 전체 면세시장 매출에서 인천공항은 약 33%의 매출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매출규모가 큰 인천공항 면세점에 입점해 있는 것만으로도 판매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인 바잉파워가 높아지게 된다.

바잉파워가 더 커지면 물품 공급업체들에 대한 지배력강화로 이어지고, 물품 구입대금의 결정권을 공급업체가 아닌 판매업체가 쥘 수 있다. 두 대기업이 인천공항 면세점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관광공사 노조 관계자는 “신라와 롯데는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약 90%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면서 “하지만 신라와 롯데 입장에서는 대한민국 공항면세시장에 대한 완전정복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천공항 내 한국관광공사면세점에 신라나 롯데의 깃발을 꽂아야 완전 독과점이 완성되고, 완전 독과점이 완성돼야 면세점에서의 상품 판매가에 대해 카르텔을 형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두 대기업 면세점들이 시장을 독점하는 순간 판매상품에 대한 가격 카르텔을 완성할 수 있다고 봤다. “가격을 올리거나 최저판매가를 정하는 등 가격통제가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시장 독점으로 소비자 피해 우려

한국관광공사 면세점이 민영화되면 인천공항에서 가격담합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것이다. 현재는 신라와 롯데가 인천공항에서 경쟁하고 있는데다, 한국관광공사라는 공기업 면세점이 사이에 있어서 가격담합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두 대기업 면세점만 남게 되면 가격담합으로 이익을 더 올리려고 하는 유혹에 보다 쉽게 빠져들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가격담합은 자연스레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면세로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구조인 면세점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

면세사업 수익금 전액을 공익사업인 관광진흥 활동에 재투자하는 한국관광공사와 달리 이들 대기업은 공적자금에 기여하는 것이 많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면세’의 공공성 훼손 우려가 나온다. 또 현재 중소기업은 대한민국 면세시장에서 약3% 정도만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그나마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약10% 정도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현재 인천공항에서 판매되는 상품 중 국산품은 20%, 전국 면세점별로는 10% 수준밖에 안 되고, 우리나라 면세점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60%가 내국인”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면세점 점유율은 엄청나게 크지만 정작 항만·공항에서 판매되는 국산품 40%가 공사 관할”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면세점 판로가 줄어들고, 자연스레 국산품 비중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는 고스란히 국내 중소기업들과 국산제품 판매의 마지막 보루인 인천공항 면세점을 대기업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민영화’에 반대하는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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