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 중소납품업체 팔아야 남는 것 없어

#사례
A사는 B TV홈쇼핑 업체에 생활용품을 납품하고 있다. 이 회사가  TV홈쇼핑에 1회 방송으로 거래된 금액은 1억2000만원. 이 중 A사는 B TV홈쇼핑에 4147만원을 수수료로 납부했다. 수수료율로 환산해 보면 38% 수준이었다.
하지만 A사가 B TV홈쇼핑에 내놓은 금액은 수수료만이 아니었다. 자동응답전화(ARS)로 들어오는 주문에 대한 할인금액을 보충하기 위해 1200여만원, 무이자 할부 비용으로 120만원, 세트제작과 영상제작 비용으로 1400여만원을 추가로 내야했다.
이 처럼 TV홈쇼핑에 추가적으로 제공한 비용만 2800여만원이었다. 결국 A사는 B TV홈쇼핑에 1번 방송 출연을 하면서 모두 6900여만원의 비용이 들어야 했다. 
이는 A사의 1회 방송 거래 금액의 58%에 해당한다. A사는 B TV홈쇼핑을 통해 10만원어치 물건을 팔아서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4만2000원 정도만을 가져간 셈이 됐다.

TV홈쇼핑 업계가 자사 방송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중소납품업체의 이익을 가로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TV홈쇼핑 업체 수수료 인하 노력이 무색해졌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TV홈쇼핑 업체들의 폐해를 보면 정부가 직접 관여하고 있는 공식 수수료율을 일부 낮추는 대신 ARS 비용이나 모델 섭외 비용 등을 중소납품업체에 떠넘기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석훈 의원(새누리당)에 따르면 TV홈쇼핑 업체들은 자동응답전화(ARS)주문 할인금액과 무이자 할부 수수료, 배송비 등 추가비용을 중소납품업체에 전가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또 TV홈쇼핑 업체들은 중소납품업체들에게 제작회의를 통해 특정 연예인 모셔오기와 특정 상품 등 사은품 끼워 넣기 등도 주문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TV홈쇼핑 업체와 중소납품업체간 판매수수료는 30∼40% 정도로 계약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약상 있지도 않은 추가비용을 전가시키는 등 납품업체들이 부담하는 유통비용은 58∼81%에 달했다.
공정위가 실태조사 등 시장 경제 질서를 위한 구체적인 액션을 취하면서 TV홈쇼핑 업체는 지난해 10월 3∼7%포인트 정도의 ‘수수료 인하’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또 공정위는 올해 안에 TV홈쇼핑 업계의 중소 납품업체 판매 수수료를 추가로 낮추는 작업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백화점·대형마트 등과 중소 제조사 판매·장려금 수수료를 2차로 인하하도록 합의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정위는 현재 GS·현대·우리·농수산 TV홈쇼핑 및 CJ오쇼핑 등 TV홈쇼핑 업계를 상대로 지난해 말 체결한 ‘중소 제조사 판매수수료 인하 합의 방안’의 이행 결과를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TV홈쇼핑의 중소납품업체에 대한 수수료 이외의 비용 전가 방식이 한층 교묘해 지는 방향으로 변질되면서 공정위의 움직임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기업 계열 TV홈쇼핑 ‘비용 떠넘기기 심각’

현재 국내에는 TV홈쇼핑 업체가 6개 있다. 이 중 NS(농수산홈쇼핑)과 중소납품업체를 전문으로 하는 홈앤쇼핑 2개 업체를 제외한 4개 업체는 대기업 계열사다. CJ와 GS, 현대, 롯데홈쇼핑 등이 모두 대기업 계열사에 속한다.
이들은 TV홈쇼핑을 통해 납품업체의 물건을 팔아주는 대가로 판매수수료를 중소납품업체에 부과하고 있다.
또 TV홈쇼핑 업체에 따라 ARS 비용, 배송료, 세트 제작비 등을 일부 중소기업에 부과하는 방식도 병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 TV홈쇼핑 업체들은 지역 케이블 방송과 같은 소위 SO(System Operator)에 채널을 부여받고 송출 수수료를 납부한다. SO들에게 TV홈쇼핑은 마진이 높은 수수료를 제공하고 있는데, 일부 SO의 광고 매출에서 홈쇼핑 채널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88%에 달할 정도이다. 중소납품업체들이 TV홈쇼핑에 내는 수수료가 SO들을 살찌우는 주요 매출원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TV홈쇼핑의 영향력이 크다. 국민들의 케이블 TV 가입률이 83.74%로 OECD 국가 중 3번째로 높기 때문이다. TV홈쇼핑의 영향력이 그 어느 유통 채널보다 막강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이다.
다른 한편으로 국내 TV홈쇼핑의 강력한 영향력은 이 사업이 정부의 허가 사항이기 때문이다. 정부 허가를 받아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구조 속에서 강력한 진입 장벽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강석훈 의원이 “정부가 사실상 TV홈쇼핑 업계를 완전 경쟁 시장이 아닌 담합 시장으로 만들어 준 셈”이라고 지적하는 배경이다.
결국 TV홈쇼핑 업체들은 이처럼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제품 판매 사업자(특히 중소납품업체)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고, 이를 통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 동안 TV홈쇼핑이 지나치게 높은 판매수수료를 받는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대형마트, 백화점 등과 함께 TV홈쇼핑의 판매수수료 인하를 위한 실태조사에 착수하는 등 이러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 결과로 지난해 말 GS, CJ, 현대, 롯데, 농수산 5개 TV홈쇼핑이 총 455개 중소납품업체의 수수료를 지난해 10월분부터 3~7%포인트 인하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수수료 이외 비용으로 공정위 규제 피해

문제는 수수료율 인하가 불가피해진 TV홈쇼핑 업체들이 수수료 외의 비용을 중소납품업체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공정위 등 정부의 규제를 피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TV홈쇼핑이 중소납품업체의 제품을 납품받는 실제 거래에서 수수료에 맞먹는 비용을 전가하는 것인데,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강석훈 의원실에서 5개 TV홈쇼핑 업체들과 거래하는 중소납품업체들에게 현장 실태를 조사해 본 결과, 이런 수수료 인하는 풍선효과를 가져와 판매수수료가 아닌 기타 항목으로 이전돼 결과적으로는 중소납품업체들에게 아무런 실익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예로 과거에는 판매수수료를 납부하면 TV홈쇼핑 업체에서 모두 부담하던 방송제작비(세트장비, 모델료, 게스트 초청비, 특수효과비 등)를 납품업체에 직접 부담시킨다거나 ARS, 배송료 등을 함께 부담하게 하는 조건 등으로 또 다른 형태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었다.
계약서상으로 나타나는 부담 조건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조사를 통해 일부 늘어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계약서상 나타나지 않는 비용의 증가가 더 심각한 문제라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특히 모델료나 게스트 초청비와 같은 항목은 TV홈쇼핑 업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납품업체가 해당 에이전트회사와 거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거래 명세서의 확인으로는 실제 전혀 파악할 수 없도록 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사전 제작 회의 등을 통해 담당 MD가 특정 연예인을 데리고 오라고 지정한다거나 사은품으로 특정 상품들을 끼워 달라는 식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상대적 약자인 중소납품업체는 이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TV홈쇼핑 업체들은 “그런 사실이 없다, 모른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이 같은 발뺌은 중소납품업체와 TV홈쇼핑 당사자간 거래 명세서 등을 통해 알아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 강 의원의 판단이다.
다른 한편에는 이들 TV홈쇼핑 업체에 제품을 납품하는 중소납품업체들도 구체적인 자료 제공을 꺼리고 있다. 관련 사실을 파악하기는 더 어려워 진 것인데, 중소납품업체들은 외부로 구체적인 자료를 유출했다가 TV홈쇼핑 업체들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 진다.

◆TV홈쇼핑 등록제 고려해야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보면 공정위가 발표한 TV홈쇼핑들의 수수료 인하 효과가 외려 수수료외 비용 부담이라는 역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소납품업체들의 실질 수수료 부담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오히려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TV홈쇼핑의 수수료와 관련한 공정위의 실태조사가 대부분 팩스를 통한 서면 조사나 전화 조사로 실시되고 있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현장에서 다양한 편법을 통해 수수료 외에 중소납품업체에게 전가되는 비용은 공정위의 비대면 조사로 밝히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강 의원은 “TV홈쇼핑 사업자들은 방송법에 의한 승인제 사업자로 새로운 사업자의 진입이 철저히 통제돼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최고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고 밝혔다.(표 참조)
이어 “내수경기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납품업체들과 비교해보면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런 결과가 정당한 거래를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중소 납품업체들의 이익을 편취해 얻은 결과라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중소납품업체에서 체감하는 실질 수수료도 공정위에서 발표하는 수수료율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TV홈쇼핑 업체에서 제출한 자료와 납품 업체들이 보낸 자료에서도 이 차이가 확인된다. 
TV홈쇼핑 업체가 내놓은 한 중소납품업체의 주방용품 판매 자료를 보면 9000여만원의 매출에 7200만원의 유통비용을 지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수수료율로 환산하면 약 81%라는 수치가 나온다.
이처럼 큰 편차가 나 올 수밖에 없는 배경을 공정위 등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파악하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강 의원은 “공정위가 지난해부터 유통사업 분야의 수수료율 인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면서도 “하지만 명목 수수료만을 조사해 발표하는 것으로 실상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이어 “향후 수수료 조사 및 공개에 있어 계약서상에 나타나지 않는 납품업체의 부담금액을 파악하고 근절시키는 것이 실질적인 수수료율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TV홈쇼핑 문제는 단기적으로는 납품업체들의 수수료 인하를 통한 동반 성장으로 풀어야겠지만 근본적으로는 TV홈쇼핑업을 등록제로 전환해 경쟁 시장을 만들어야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TV홈쇼핑 불공정 행위의 근원을 현행 ‘승인제’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현행 승인제는 몇몇 대기업에 특혜를 준 데서 시작됐다는 전제를 놓고 보면 조선시대 육의전이 금난전권을 가지고 독과점의 횡포를 이용해 이득을 누려 폐단을 낳았던 것처럼 현재의 TV홈쇼핑 업체들이 특혜를 통해 비교적 손쉽게 이윤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TV홈쇼핑 직택배, 들어 보셨나요”

TV홈쇼핑 납품 중소기업 A사 대표 인터뷰

TV홈쇼핑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중소 기업인들은 불이익을 우려해 수수료 부과 관행을 밝히기 어려워한다. A사의 대표는 익명을 전제로 TV홈쇼핑이 어떻게 중소납품업체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지 속속들이 털어 놓았다.

-TV홈쇼핑사와 거래하면서 약정된 수수료 외에 지불되는 비용은 어떤 것들이 있나.
=ARS, 무이자할부, 세트제작, 모델료, 배송비 등이 있다.

-ARS비용은 어떻게 부담하게 되나.
=주문 콜센터와 연결이 힘들 때 상담원이 아닌 자동응답(ARS)을 통한 주문을 하게 되는 경우 소비자는 추가적으로 일정금액을 할인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ARS로 주문시 1만원 할인이 되면 이중 9000원을 업체에서 부담하고 1000원은 TV홈쇼핑에서 부담하는 구조이다. 소비자는 웬만하면 저렴한 쪽으로 주문을 하게 되다보니 ARS가 상대적으로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 80~90%가 ARS를 통한 주문으로 보면 된다. 업체는 TV홈쇼핑 업체에 지급하는 수수료 외에 9000원의 추가비용이 발생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무이자할부는 어떻게 적용되나.
=10개월 무이자를 프로모션으로 진행하게 되면 추가적으로 1%를 업체에서 부담하고 대금정산시 공제 후 입금된다.
   
-TV홈쇼핑 업체에서는 세트제작비, 모델료를 부담시키지 않는다는데 현실은 다른가.
=그런 내용이 언론에 나올 때마다 참 현실과 너무 다르게 보도되는구나.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TV홈쇼핑 업체의 MD는 개그콘서트의 누구를 데리고 와라, 소품은 최상으로 준비하라, 인지도 있는 요리사를 모델로 써라, 로고는 우리가 제작하고 대금정산에서 정산하겠다는 말을  TV홈쇼핑과 거래하는 중소납품업체 사장들은 다 들었을 것이다.

-배송은 TV홈쇼핑에서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TV홈쇼핑 물류센터에 입고해 배송하는 경우 있다. 하지만 업체배송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저희 회사의 경우 기존에 택배회사와 건당 2000원 초반으로 계약을 해 서비스를 이용 중이었다. TV홈쇼핑 업체에서는 배송 서비스 문제를 내세워 그쪽에서 지정한 택배업체를 이용하도록 했다. 이를 TV홈쇼핑 직택배라고 한다. 택배비는 저희가 이용하는 택배사보다 건당 500원 이상 비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용하게 된다.

-이런 요구와 조건을 거절할 수는 없는가.
=MD는 바로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편성이 곤란할 것 같다고”. TV홈쇼핑 업체는 대기업들이다. 우리가 부담하는 비용들에 대해 이들은 납품업체의 자발적인 요청에 의해 진행한 것으로 몰아간다. 거래시점에서 TV홈쇼핑 업체는 납품업체의 도장을 받아 완벽하게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업체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사실 이런 말을 전달하는 것도 걱정이다. TV홈쇼핑 업체를 압박하면 납품업체가 피곤해진다. 근본적인 확실한 처방이 없으면 안 된다.

-다른 TV홈쇼핑과 거래했을 때 불이익이 있나.
=당연히 있다. 예를 들어 홈앤쇼핑(중소납품업체 전문 TV홈쇼핑 업체)과 거래하는 가운데 다른 TV홈쇼핑과 거래하기 위해 상담을 하게 되면 “더 싸게, 더 풍성한 구성으로 연예인 누구를 붙여 가지고 오라”고 주문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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