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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 이성연 애터미경제연구소장
  • 승인 2012.09.2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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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한 탁아소가 부모들이 맡겨놓은 아이들을 약속한 시간에 데려가지 않아 골치를 앓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탁아소측은 늦게 나타나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그런데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하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늦게 나타나는 부모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는데, 반대로 더 늘어난 것이다.

전통적 경제이론과 게임이론의 관점에서는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 모두 제 시간에 아이들을 데려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벌금을 부과하기 전에는 아이를 늦게 찾아가는 것에 대해 엄청나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자기 아이 때문에 직원들이 퇴근도 못하고 기다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부모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서둘러서 탁아소에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늦은 것만큼 벌금을 내면 된다고 생각해 미안한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벌금을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마치고 더 늦게 나타난 것이다. 늦은 것만큼 돈을 더 지불했으니 미안할 것도 없고 정당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의 저변에는 공정성(fairness)의 문제가 개입돼있다. 부모들은 제 시간에 아이를 찾아가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부당한 이득을 얻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8시간의 요금을 지불하고 9시간의 혜택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늦는 것만큼 돈을 더 지불한다면, 그것은 공정한 게임이다. 그러니 늦는 것에 대해 심적 부담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통적 경제학은 인간은 작은 돈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로 본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정하는데 있어 경제적 유인이면 충분하다고 봤다. 정부의 경재정책과 기업의 모티베이션 전략도 이런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인간은 돈보다 더 귀중한 가치를 추구한다
신자유주의는 한마디로 시장지상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연공서열제 폐지, 성과급제도, 무한경쟁, 형평성보다는 효율성 중시 등이 모두 이런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인간은 조그만 경제적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일한 성과에 따라 보수를 지급하면 더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인간관에 기초하고 있다. 한마디로 돈이 가장 훌륭한 모티베이터라는 인식이다. 돈이라는 당근을 이용해 사람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이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돈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 인간에게는 돈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그 무엇에 해당하는 덕목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체면, 위신, 인격, 자존심, 존중, 공정성, 형평성, 공생, 도덕성, 자유, 신뢰, 보람, 호의, 인정 등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사회와 동반성장을 강조하고, 2011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공생발전을 주창함으로써 우리사회에서 공정성과 공생발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게 됐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런 주창이 있기 전에 이미 국민들은 공정성 문제를 비롯한 사회적 정의에 대해 목말라하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게 국민들의 독서경향에서 드러났다.

하버드대학교 정치철학 교수인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강의록인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지난해 베스트셀러가 됐고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다. 그 후로도 샌델 교수의 다른 책들이 여러 권 발간됐고 샌델 교수를 직접 초빙해 강연을 듣기도 했다.

샌델 교수의 책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시사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어떤 측면에서는 무미건조하고 상당한 지식이 밑바탕이 돼야 소화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도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스테디셀러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국민들이 정의에 목말라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공정성도 우리사회가 실현해야 할 중요한 정의 덕목 중 하나이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사회에 공정하지 못한 행위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명 경제신문이 현재 우리사회가 직면한 상황을 ‘분노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 분노의 한 원인이 공정하지 못한 게임에 있을 것이다.

즉 사회적 강자들이 상대적 약자들을 부당하게 수탈하고 있다는 인식인 것이다. 원청업체의 하청업체에 대한 가격 후려치기, 백화점 입점업체들에 대한 과도한 수수료, 영세 가입자들에 대한 높은 카드 수수료 등이 이런 현상의 한 단면이다.

행동경제학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실험한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에서도 우리는 제안자(사회적 강자)가 지나치게 불공정한 제안을 하는 경우에는 반응자(사회적 약자)는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포기하면서까지 판 자체를 깨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돈보다 더 귀중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바로 게임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반칙하는 자가 이득을 보고 무임승차하는 자가 상류층을 점령하는 사회가 돼서는 결코 선진사회가 될 수 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성연 애터미경제연구소장  nexteconomy@nex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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