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대책 없이 규제만 강화…행정력 부재 비난

지난해 사회적 문제로 물의를 빚었던 불법 다단계가 또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일단 급한 불부터 피하고 보자는 속셈으로 거여ㆍ마천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 계속 활동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는 것.

새로운 회사를 차려 영업을 준비하고 사업자 일부는 다른 업체로 이동하는 등 제2의 거마대학생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주무부처인 공정위는 관리감독과 규제만을 논할 뿐 사후관리에는 손을 놓고 있어 우려가 기정사실화 될 판이다.

행정 제재 후 사후관리 소홀
대학생 다단계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 일명 ‘거마대학생’ 사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부각되고 있다. 당시 지속적으로 문제가 됐던 불법 다단계문제가 취업난과 맞물려 대학생들의 피해를 증폭시킨 것.

시장을 관장하는 부처는 물론이고 언론 매체들도 이러한 피해 사례를 삼으며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지만 오히려 다단계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휴학생, 대학생 등 5000여명이 몇몇 업체로부터 교육ㆍ합숙을 강요받고, 제2금융권 등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아 건강기능식품ㆍ화장품 등 업체의 제품을 비싼 가격에 강매당하는 사건이 서울 송파구 거여동ㆍ마천동 일대에서 발생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 송파경찰서는 이러한 행위가 포착된 7개 업체를 수사했고 업체 대표 등 9명을 구속하는 등 총 249명을 사법처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울산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터졌다. 한 다단계업체가 500만∼600만원 상당의 건강식품 등을 구매한 뒤 다단계 판매원이 되면 3∼6개월 안에 간부직급이 되고 월 500만∼800만원을 벌 수 있다고 과장하는 수법으로 2만7000여명을 회원으로 가입시켜 총 1400억원 상당의 부당 매출을 올린 사실이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난 것.

특히 이 업체는 회원의 53%가 대학생이나 휴학생으로 추정되는 25세 이하이고 대다수가 학자금 대출 명목으로 구입 대금을 빌렸다가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고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 대학생 다단계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러한 사건들이 불거지자 공정거래위원회는 방문판매법에 ‘사행적 판매원 확장행위 금지(제24조)’라는 규정을 신설, 다단계판매요건을 강화해 오는 8월18일부터 시행하는 한편, 위법행위 적발 시에는 엄정조치하고 피해사례 홍보를 통해 경각심을 제고시키겠다고 밝혔다. 

취업, 고수익 등을 미끼로 대학생들을 속여 판매원으로 가입시킨 업체들의 잘못이 크지만 이 같은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관리감독과 규제만을 강화하는 공정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대학생 다단계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불거졌던 문제이다. 하지만 근절되지 않고 계속 발생하고 있다. 무조건 막기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 시장에서 증명된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경찰의 단속 등으로 조직이 와해된 대학생 다단계 업체인 E사가 폐업하자 사업자들은 다른 회사로 이동해 사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또 일부는 지역을 옮겨 새로운 회사를 차리고 영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은 공정위가 행정제재 후 사후관리가 미흡하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행정처분 후 간판을 바꿔 달고 새로운 회사를 출범시켜 버젓이 영업을 이어가도 이에 대한 어떠한 제재나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일정 수준의 규제는 필요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며 “문제발생 시마다 관리감독과 규제를 강화해 해결하려는 사후약방문식의 공정위는 행정력 부재”라고 비판했다. 

이어 “‘거래중지 해지 업체에 대해서 만이라도 사후관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할 시점”고 강조했다.

대학생 범위 기준도 애매해
공정위의 모호한 표현도 문제가 되고 있다. 방문판매법상 미성년자의 다단계판매활동을 금지하는 규정은 있으나, 공무원이나 교사 등을 제외한 성인은 누구나 다단계판매원 가입이 가능하다. 미성년자의 경우에도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으면 다단계 판매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따라서 만 20세 성인인 대학생들이 다단계판매원으로 등록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다만 비교적 사회적 경험이 적은 대학생이 다단계 활동을 할 경우 금전적 피해뿐만 아니라 경제 가치관 왜곡, 인간관계 파괴 등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다단계업계에서 대학생의 다단계판매원 등록을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업체들이 판매원 등록시 대학생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학생의 기준’이다. 대학교 재학 또는 휴학생이 아니더라도 대학생 연령대인 만 20세에서 24세까지는 대학생으로 간주해야 되느냐는 것이다.

특수판매공제조합은 대학생 연령대인 만 20세에서 24세의 판매원 구성 비율을 전체 판매원의 30% 이내로 유지하도록 하는 지침을 조합사에 내렸다. 대학생 연령대 판매원 비율이 전체판매원의 30%를 초과하면 초과한 5%마다 업체의 신용등급을 1개 등급씩 내려 공제료를 올리는 등의 패널티를 적용하겠다는 것.

이와 관련 업체 한 관계자는 “대학생이 아닌 20대 초반의 구직자 중에 다단계를 합법적인 산업을 인지하고 판매원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들은 성인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취업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대학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24세 미만이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처사”라고 항변했다.

이 같은 상황에 공정위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학생’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그 판단 기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의 모호한 법적 잣대는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처사이다. 이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 다단계업체와 사업자들”이라며 “모호한 표현을 명확한 표현으로 바꿔 규제근거를 마련해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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