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스미스(Adam Smith)를 효시로 한 경제학은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나, 경제학이론들이 실제경제와 인간의 경제활동을 설명하는데 상당한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론과 실제가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는 인간이 갖는 다양한 사회적, 인지적, 감정적 요인과 의사결정과정에서 심리적 요인에 의해 일어나는 편향(bias)을 무시한 것과 관련이 있다.

실험심리학의 발달로 인간의 의사결정과 행동이 실제로 어떤 원리에 따라 이뤄지는지가 점차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심리학과 경제학이 결합해 나타난 게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실제적인 인간행동을 관찰하고 연구해 인간이 어떤 원리에 따라 행동하고 그 결과는 어떤지를 규명하려 한다.

전통적인 주류경제학은 인간을 완벽하게 이기적이며 합리적인 존재,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가정하고 이론을 정립한다. 그러나 실제 인간의 행동은 완벽하게 이기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 모형의 실험을 통해 인간은 완전하게 합리적이거나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최후통첩 게임에서 마음대로 돈의 배분비율을 결정할 수 있는 제안자는 자신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고 제안을 받은 반응자도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자신에게 이익이 됨에도 불구하고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나 최후통첩 게임에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은근히 이기심을 숨긴 이기적 계산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공정하게 나눠야 된다는 마음, 또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그런 행동이 나온 게 아니라 너무 적게 제시해 상대방이 거부하면 자신도 한 푼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거부하지 않을 만큼만 제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이런 의문을 확인하기 위해 설계된 게임이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이다.

이 게임에서는 제안자는 마치 독재자처럼 행동할 수 있다. 제안자는 오리지널 최후통첩 게임에서처럼 돈의 배분비율을 제안한다. 다른 점은 반응자는 거부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게임에서는 제안자가 제시하는 비율이 그대로 결정되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제안자는 상대방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걱정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한마디로 자신의 속마음을 숨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제안자가 자기 맘대로 행동해도 좋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공정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
1986년 다니엘 카네만(Daniel Kanehman) 교수 등은 161명의 학생에게 20달러를 주고 독재자 게임을 수행해 봤다. 제안자들에게 20달러를 주고 반응자들에게는 거부권을 주지 않았다. 제안자들이 제시한 비율은 최후통첩으로 반응자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학생들 중 70%가 20달러를 공평하게 나눠가졌다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상대방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 전혀 걱정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므로 제안자는 자신의 욕심을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입장에 있다. 즉 9:1, 9.9:0.1을 제안하더라도 상관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실험결과는 제안자들이 상당히 관대한 제안을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상대방이 거부권을 가지는 오리지널 최후통첩 게임보다는 인색하게 제안하는 비율이 늘기는 했지만 여전히 7:3, 심지어는 5:5, 6:4로 나눠가진 비율이 30%를 상회했다.

이 독재자 게임으로부터 우리는 최후통첩 게임에서 제안자들이 상당히 관대한 제안을 한 것은 상대방의 보복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에 실시한 최후통첩 게임은 주로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따라서 위에서 설명한 결과는 미국인들의 고유한 문화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는 추론을 해볼 수도 있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위와 같은 결과가 인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여러 번의 최후통첩 게임을 실시했다. 그런데 현저한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결과는 모두 유사하게 나타났다. 문화권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평균 30% 이상 제안하고, 또 30% 이상은 돼야 제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공정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문화권에 관계없이 인류 보편적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불공정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당장 눈앞의 경제적 이득도 거부하고 강한 분노를 표출한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판을 깨버리는 행동도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를 분노의 사회라고 보도하는 언론도 있다. 절대적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소득분배 게임이 불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인식에 기인하는 분노의 표출이다. 더 늦기 전에 게임의 룰을 공정하게 정립해야 한다. 누가 앞장서야 하는가.

사회여론형성 계층, 특히 언론과 사회지도층이다. 스스로 개혁하지 않고 기득권만 움켜 안고 있다가 밑으로부터 개혁을 강요당하게 되면 많은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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