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용어 변경 필요성 시급

언론의 무분별한 언어사용으로 다단계판매 업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다단계판매 업체가 아닌 불법피라미드 업체 등을 지칭하면서 ‘다단계’라는 용어가 사용돼 합법적인 틀 안에서 영업하는 다단계판매 업체에까지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탓이다.

최근 신문과 방송뉴스에는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꾼이라는 조희팔(55)씨의 사망 관련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3조5000억 다단계 사기 조희팔 사망?’ 등을 헤드라인으로 올리고 있다.

경찰의 브리핑에 근거한 이 보도의 주 내용은 “3조5000억원대의 다단계 사기를 주도한 혐의를 받다 중국으로 밀항한 조희팔(55)씨가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사망했다고 경찰이 밝혔다”는 것과 “피해자들은 이 같은 발표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등록된 다단계판매 업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조희팔의 사기행각이 ‘다단계 사기’라고 표현돼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방판법)’에 따라 설립·운영되고 있는 합법적인 업체들이 마치 불법적인 영업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오해를 받게 됐다는 점이다. 

다단계판매 업체 한 관계자는 “이 같은 보도들이 계속되면서 ‘다단계=사기’라는 등식이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되고 있다”며 “정상적인 영업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의 무분별한 ‘다단계’ 용어 사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4월에만 해도 “브라질 철도사업 등 대규모 해외 사업을 유치했다고 속여 5년간 노인 2400여명으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받아내 200억원을 빼돌린 다단계 사기단 11명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내용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마치 등록된 다단계판매 업체가 벌인 사건으로 잘못 보도됐다.

다단계판매가 불법적인 영업의 하나인 것처럼 오해를 산 것이다. 또 “구직 미끼 다단계 사기 기승” 등 종종 등장하는 취업 사기 기사도 사실과 다르게 다단계 판매 업체의 불법 활동처럼 오인될 소지를 만들었다.

언론에 협조 요청, 효과는 ‘글쎄’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단계판매 업계에서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직접판매공제조합(직판조합)은 23일 주요 일간지 편집국과 방송 보도국에 ‘다단계판매 관련 보도에 대한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서 직판조합은 “최근 언론에 보도된 ‘불법 다단계’ 또는 ‘다단계 사기’의 피해유형을 살펴보면 시·도지사에게 등록하고 합법적으로 영업하는 다단계판매 업체들의 문제가 아니라 방문판매업으로 신고한 후 다단계판매의 방식을 차용해 영업하거나 물품 거래는 없이 금전만을 거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합법적으로 영업을 하는 건전한 다단계판매 회사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다단계판매와 관련된 보도 시, 등록되지 않은 불법업체에 대하여는 ‘불법피라미드 업체’라는 용어를 사용해 합법적인 다단계판매 업체들이 다단계판매 용어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협조해 달라”고 적시했다.

합법적인 다단계판매 업체들이 법의 테두리 내에서 영업하고 있다는 점은 전혀 설명되지 않은 채 언론보도에서 ‘불법 다단계’ 또는 ‘다단계 사기’라고 표현돼 판매원이나 소비자들에게 다단계판매가 무조건 불법적인 영업인 것처럼 오인된다는 업계의 우려를 전달한 셈이다.

직판조합 관계자는 “이번뿐만이 아니라 이 같은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언론사 편집국장은 물론 사회부 담당 기자들에게도 같은 내용의 공문을 보내 협조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대체 명칭 마련 시급
업계에서는 용어로 생기는 오해를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 ‘다단계판매’라는 법적 용어를 아예 다른 명칭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방판법에 규정된 ‘다단계판매’를 ‘직접판매’나 ‘네트워크마케팅’ 등으로 변경하게 되면 불필요한 오인의 소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장은 언론사에 대한 협조 요청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전망에 기반하고 있다. 오랫동안 사용해 온 용어를 언론사에서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란 현실적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한 경제지 유통부 데스크는 “단계별로 회원들을 가입시켜 사기를 일삼는 행위를 ‘다단계 사기’ 외에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대다수 독자들이 이 같은 용어를 통해 현상을 바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다단계 사기’라는 제목이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매체 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독자들이 주목할 수 있는 소위 ‘섹시한 제목’을 뽑는데 있어서 굳이 다른 용어를 선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이는 또 사기꾼을 다루는 기사에서 흔히 ‘다단계’라는 표현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기도 하다.

다단계판매의 법적 용어를 변경하는 작업도 쉽지는 않다. 지금까지 업계에서는 두 개의 공제조합과 한국직접판매협회 등 유관 기관을 통해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에 ‘업태명 변경’을 간접적으로 타진해 왔다.
직판조합 관계자는 “조합 이사장이 공정위 관계자들을 만날 때 이 같은 의사를 전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 관계자는 “과거에 업태명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들이 있기는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업계에서 공개적이거나 구체적으로 요청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무엇보다 ‘다단계 판매’를 어떤 명칭으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업계의 합의된 의견을 가져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직접판매로 변경했으면 하는 의사를 갖고 있는 인사들도 있었지만, 이 용어는 소비자들에게 또 다른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적절치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네트워크마케팅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인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외국어를 법률명에 넣는 것에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오히려 일본에서 사용하는 ‘연쇄판매’도 거론 됐는데, 업계에서 (이 용어에는) 마뜩치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우선 업계에서 ‘다단계’를 대체할 수 있는 업태 명칭의 마련이 시급해졌다. 공제조합 등을 중심으로 활발한 의견수렴을 거쳐 주무부처에 합의된 안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언론에 ‘다단계’라는 용어를 구별해 사용해 달라는 요청의 실효성이 의심된 데다, 단기적인 처방 보다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업계의 당면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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