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 15일 발효됐다.
2006년 2월 협상 추진 선언 이후 6년, 협상 타결과 공식 서명 이후 5년 만의 결실이다. 그동안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갈등을 불러왔고
아직도 여러 논란이 있다. 한ㆍ미 FTA가 발효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효과를 속단하긴 이르지만 수출을 늘리는 것만큼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부분도 중요하기 때문에 점검과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FTA는 협정을 체결한 두 나라가 상대국에 비해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 즉 비교우위를 가진 제품이나 서비스를 서로 수출하고 수입함으로써 경제적 부가가치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이에 따라 FTA를 체결한 협정 당사국들 간 교역과 생산의 총량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이런 점을 비춰볼 때 한·미 FTA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관세청에 의하면 FTA 발효 첫 달인 3월 우리나라가 미국으로 수출한 금액은 59억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 46억만 달러보다 27.7% 늘어 확연한 증가세를 보였다. 4월 총수출액 462억만달러, 수입액은 441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동기대비 4.8%, 0.2% 각각 감소한 수치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지난달 미국으로 수출한 금액은 53억1000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 51억만 달러보다 4.3% 증가했다.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금액도 39억9000만 달러로 전년동월대비 3.3% 늘어났다. 무역수지는 13억7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석유제품(91.5%), 기계류(20%), 자동차부품(14.7%) 등 관세인하 품목을 중심으로 높은 수출 증가세를 보여 정부는 한·미 FTA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평이다. 

아울러 발효 이후 한국 투자에 관심을 갖는 해외투자자들도 크게 늘었다. 지난 15일 지식경제부와 코트라가 일본 도쿄에서 ‘한국투자설명회’를 개최, 미쯔비시화학, 도카이카본, 일본전기초자 등 일본기업 3개사로부터 총 8억7000만 달러(3억7000만 달러 투자신고, 5억 달러 투자 협력 MOU)에 달하는 투자유치를 성사시켰다.

이번 설명회는 최근 엔고와 전력난 등으로 해외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는 일본기업을 한·미 FTA 발효에 맞춰 한국 유치를 위해 마련됐다. 설명회를 통해 관세인하 등 FTA 효과를 집중적으로 부각, 일본 투자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현장에 FTA 홍보관을 설치, 품목별 관세인하 효과 등 상세한 설명 자료를 제공했다.

이번에 투자유치가 성사된 기업들은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는 소재·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한국에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며, 세계적인 기술경쟁력을 갖춘 기업들로서 국내 산업경쟁력 강화와 국내기업의 소재·부품 수급 안정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지식경제부는 설명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미국 뉴욕에서 투자설명회를 개최, 4억79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시키는 등 한·미 FTA가 발효 이후 한국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형마트, 오렌지·와인 ‘덕’ 봤다
FTA 발효 직후 미국산 제품의 관세인하 효과는 유통업계에 곧바로 나타났다. 미국산 와인, 맥주, 오렌지, 아몬드, 호두 등 FTA 발효 전 수입돼 관세 인하 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유통업체들은 FTA 발효에 맞춰 이들 품목의 가격을 낮춰 판매한 것.

가격인하가 특히 두드러진 품목은 미국산 오렌지였다. 이마트에서는 미국산 오렌지(4~5개 기준)는 4880원 판매되던 것을 600원 인하된 4280원에 판매했다. 롯데마트는 오렌지 1봉(4~8개) 4980원에 판매하던 것을 4200원에 할인판매했고 홈플러스도 개당 1350원(오렌지 특대)에서 27.4% 저렴해진 980원에 내놨다.

와인 역시 가격이 내려갔다. 이마트에서 판매중인 ‘메니스위쯔콩코드750’은 8900원에서 5900원으로, 아포틱(750㎖)은 3만5000원에서 1만7500원으로 각각 내렸다. 롯데마트도 ‘칼로로시 레드와인’을 10.2% 할인된 7900원에 판매했다.

이 같은 가격인하로 판매량이 급증하며 매출을 견인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3월 15일부터 4월 12일까지 오렌지 19.5%, 와인 36.6% 매출이 각각 상승했고 롯데마트 역시 같은 기간 미국산 오렌지 매출이 14.6% 신장했고 와인도 62.5%나 늘었다. 홈플러스도 미국산 오렌지 매출 비중이 80%에서 90%로 상승했고 미국산 와인 매출도 전체 와인 중 12%에서 15%로 늘었다.

이달부터는 관세가 즉시 철폐된 건포도와 아몬드, 피스타치오 등 건·견과류와 미국산 냉동 수산물 등도 들어올 예정이라 가격 인하 효과가 확산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대형마트업계는 이들 품목의 물량 확보에 나서는 한편, 해외 직소싱을 통한 판매가격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이마트는 농심이 유통하던 ‘웰치스 포도주스(1.89ℓ)’를 직접 수입하는 방법으로 유통단계를 줄여 3월 15일부터 가격을 7650원에서 6100원으로 20.2% 인하해 판매했다.

홈플러스는 와인, 체리, 오렌지 등 시판 중인 미국산 상품 물량을 늘리는 한편, 유아용 과자 등 신상품을 확대할 계획이다.
롯데마트는 오는 8월까지 오렌지, 망고, 포도, 자몽, 체리, 메론 등 6개 상품을 지난해 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약 100억원 가량을 직접 수입해 판매가를 낮출 계획이다.

아울러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현지 와이너리와 연계해 롯데마트 전용 와인을 개발, 상반기 내에 대량으로 들여올 예정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관세 인하 효과와 더불어 일반 와인에 비해 약 30% 저렴하게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비자, 장바구니 물가 변화 없어 
이에 반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FTA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광역시 사는 주부 고은주 씨(36)는 “뉴스와 대형마트 광고 등을 통해 관세 인하분과 마트 할인 행사로 절반 값에 물건을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면서 “하지만 실제로 보니 그렇지 않았다”며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값이 싸진 품목은 일부이고 그마저도 내림폭이 낮다는 것이다.

이처럼 FTA가 공식 발효됨에도 불구하고 일부 제품을 제외한 미국산 제품의 가격인하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소비자들이 많다.

업계 전문가들은 관세혜택이 적용된 품목이 본격적으로 매장에 풀리지 않았고 관세율이 적용되는 시기도 각기 달라 혼란을 주는 등 소비자들이 가격 인하효과를 체감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축산물의 경우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관세가 매년 2.7%씩, 향후 15년간 점진적으로 낮아지고 돼지고기는 관세가 10년에 걸쳐 매년 약 2.2%씩 인하되기 때문에 사실상 가격 인하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화장품과 의류 역시 관세가 철폐됐다. 하지만 나이키, 캘빈클라인, 코치 등 국내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들은 제품의 대부분이 인건비가 싼 동남아시아 등 제3국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때문에 아예 FTA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아울러 수입·유통업자들이 마진으로 흡수해 관세 인하효과를 잠식시킨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칠레 및 한·EU FTA가 발효 당시 관세가 철폐 내지 인하됐지만 수입제품들이 실제 소비자가격 인하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

일례로 칠레와의 FTA 이후 대표적인 관세 인하 품목인 칠레산 와인 소비자가격이 오히려 올랐었다. 수입원가가 7~8달러인 칠레산 와인 ‘몬테스 알파’는 15% 관세가 철폐에도 불구하고 4만~5만원이 넘는 높은 가격에 판매된 것.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유통기업 250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실시한 결과, 수입상품 가격을 내리지 않겠다고 답한 업체가 31%에 달했고 ‘변화 없다’는 답변도 31.2%를 차지했다. 가격을 내리겠다는 응답한 업체 중에서도 관세 인하분 중 일부만 반영하겠다는 곳도 75%에 달했다.

이에 소비자들이 가격인하 효과를 체감하려면 FTA 그 자체만으론 불충분하며, 수입·유통 제도 및 구조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경제가 농축산업 등 경쟁열위 부문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FTA를 통해 시장을 개방한 것은 이 피해에 따른 비용 부담보다 우리 경제 전체가 누릴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FTA는 최종 소비자들의 후생 개선 부분까지 함께 포함돼 있는 만큼 수입과 유통 부문의 독점과 이로 인한 후생 감소가 바로잡히지 않으면 기대했던 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독과점 유통구조 개선 추진
이러한 지적에 정부도 FTA에 따른 가격인하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유통구조를 손보겠다고 뒤늦게나마 나섰다.
최근 정부는 관세인하폭이 크면서 서민생활과 밀접한 30개 품목을 선정해 FTA 발효 전후 가격동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 아몬드, 건포도, 오렌지, 건자두, 승용차, 전기면도기 등 10개 품목은 FTA 이후 수입가격과 국내 판매가격이 동시에 큰 폭으로 하락했다.

호두, 스위트콘, 조제겨자, 위스키, 보드카, 초콜릿 등 14개 품목은 외국 수출업체들의 수출단가 인상 등으로 수입가격이 상승했으나 국내 판매가격은 향후 FTA효과 기대감 등으로 수입가격보다 소폭 상승하거나 하락했다.

이에 반해 오렌지주스, 백포도주, 맥주, 생수 등 6개 품목은 기존 재고물량과 독과점적 유통구조 등으로 인해 가격인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오렌지주스는 수입가격이 21.5% 떨어졌지만 판매가격은 5.7%가 올랐고 맥주도 수입가격이 20.8%로 하락했으나 판매가격은 5.5%가 올랐다.

이와 관련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비자들의 FTA체감효과가 불충분한 것은 독과점적 유통구조로 국내 판매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며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마련, 과도한 유통마진을 줄여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우선 유모차, 소형가전 등 공산품의 경우 기존 영세업자 위주의 병행수입 시장에 대형마트·전문백화점 등 대규모 업체의 참여를 활성화해 가격경쟁과 독점구조 개선을 유도할 계획이다. 수입브랜드 유모차는 보통 국내 수입업체 한 곳이 독점 수입권한을 갖고 있는 구조로 유통이 2~3단계에 불과한 데 비해 가격이 비싸게 책정돼 왔다.

또 독점 수입업체와의 경쟁이 가능하도록 병행수입품에 대한 AS시스템을 구축하고 QR코드 부착 등 통관인증제를 통해 경쟁력을 키운다는 방침이다.

K-컨슈머리포트를 통해 소비자에게 국내외 주요 제품에 대한 가격, 품질 비교정보를 확대 제공하고,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제조국 등 원산지정보를 공개해 해외 유명브랜드를 과시목적에서 소비하는 데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방향으로 유도키로 했다.

또 과일·가공식품 등 농식품은 공동구매를 확산해 수입단가와 운송비 등 제반 수입비용을 줄이고, 와인·맥주 등 주류는 수입업자들의 소매판매를 활성화해 불필요한 거래단계를 축소해나갈 방침이다. 아울러 수입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 가격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업체 간 경쟁을 확산시킬 계획이다.

박 장관은 “FTA 주요 품목에 대한 가격동향을 점검하고 품목별로 세부적인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추가로 마련할 계획”이라며 “수입·유통업체의 재판매가격유지행위, 담합 등 가격경쟁을 저해하는 불공정행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소비자운동도 적극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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