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사극, 내용은 트렌디 ‘신선

종영 후에도 이토록 이슈를 쏟아내는 프로그램은 드물었다. 지난 3월 15일 2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은 짙은 여운을 남긴 채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다. 40%가 넘는 경이로운 시청률부터 각종 경제적 지표에 이르기까지 해품달은 그야말로 ‘이슈를 품은 드라마’였다.

시청률 20%만 넘어도 ‘성공한 드라마’ 대접을 받는 요즘 상황에서 해품달이 기록한 시청률 40%는 놀라운 수치다. 42.2%(AGB닐슨미디어리서치)의 시청률을 기록한 마지막 회 분당 최고 시청률은 48.1%까지 치솟았다. 제작사 측이 “25%만 나와도 ‘대박’”이라고 예상했던 것을 훌쩍 넘어섰다. 타 방송사는 해품달이 끝나기만 기다리며 첫 방송 일정을 조율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해품달을 제작한 송진선 팬엔터테인먼트 기획팀 차장은 “동시간대 타 방송사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줄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해품달 시청률이 늘어났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며 “TV를 보지 않는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광고 수익, 판권 수익, 주·조연 배우들의 CF 수익을 비롯한 각종 경제적 효과는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정도다.

탄탄한 스토리의 힘 ‘절대적’
영향력 면에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해품달’을 비롯해 이전에 방영된 ‘뿌리 깊은 나무’, ‘공주의 남자’, ‘성균관 스캔들’ 등 바야흐로 ‘퓨전 사극’ 시대가 활짝 열렸다.

사극은 아니지만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옥탑방 왕세자’ 역시 조선시대 왕세자가 등장하는 일종의 ‘퓨전’이다. 역사를 바탕으로 하되(‘해품달’은 전적으로 허구다) 형식만 ‘사극’일 뿐 속내를 들여다보면 트렌드 드라마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는 퓨전 사극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같은 코믹 대사 톤이라도 한복을 입은 배우가 하면 효과는 두 배다.

스토리 면에서도 정통 사극에서 몇 번씩 ‘우려먹은’ 역사적 사실과 인물이 아닌 참신하고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고 판타지 혹은 멜로 요소를 강화함으로써 기존 사극에 ‘물린’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 모은다.

그뿐만 아니라 ‘내용이 어렵고 딱딱하다’는 이유로 정통 사극을 멀리했던 젊은 층까지 끌어안음으로써 ‘대박 드라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다. 여기에 의상부터 세트, 배우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비주얼 요소는 보는 재미를 배가한다. 물론 퓨전 사극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해품달’을 예로 ‘성공의 조건’을 들여다보자.

사실 해품달은 여러 가지 ‘약점’을 갖고 출발한 드라마였다. 젊은 연기자들의 흥행 파워가 상대적으로 약했고 무엇보다 가상의 시대, 허구의 인물들이 이끌어 가는 픽션 사극이었다. 해품달의 대박 비결은 바로 이러한 약점들을 장점으로 승화한 데 있다.

송진선 팬엔터테인먼트 차장은 “김수현이란 배우가 성인으로선 첫 도전이었기 때문에 분명 부담감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굉장한 잠재력을 봤고 무엇보다 오히려 더 참신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바로 이 부분에 소위 ‘되는’ 드라마와 ‘안 되는’ 드라마가 갈리는 지점이 있다. 대형 스타 혹은 아이돌 스타의 투입 등으로 극 초반 ‘이슈 몰이’를 할 수는 있지만 더 이상 절대적인 ‘흥행 보증수표’는 없다는 것이다. 오직 콘텐츠의 힘, 스토리의 힘만이 있을 뿐이다.

송 차장은 “해품달은 탄탄한 스토리를 가진 원작이 있었고 캐릭터를 잘 살려낸 작가의 대본이 있었기 때문에 시청률을 떠나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SNS 통해 시청자와 양방향 소통
좋은 콘텐츠는 시청자가 먼저 알아보고 ‘입소문’을 낸다는 점에서도 성공을 위한 절대적 요소다. 송 차장은 “과거에는 시청자들이 수동적으로 드라마를 받아들였다면 요즘은 ‘쌍방향’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콘텐츠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보는 눈이 정확해져 ‘구성’을 논하고 ‘캐릭터’를 논할 정도로 시청자들이 똑똑해졌다”고 말한 뒤 “이처럼 드라마를 보는 세대가 달라지면서 홍보 전략도 일방적 전달이 아니라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한 양방향 ‘소통’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SNS를 통해 제작진과 시청자 간 감정 교류가 이뤄지면서 시청자들은 스스로 드라마를 만들어 간다는 참여의식을 갖게 돼 적극적으로 ‘입소문’을 내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성공한 퓨전 사극이 대부분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묻혀 있던 원작을 발굴하고, 또 좋은 콘텐츠 하나가 드라마·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제작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가 이뤄지면서 콘텐츠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제작사들이 ‘선점’하기 위해 마구잡이식으로 원작을 사들인다는 점이 그중 하나다.

퓨전 사극이 대세가 되면서 ‘오리지널’이 사라진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송 차장은 “드라마 트렌드에도 흐름이 있는데 지금은 ‘조선의 뱀파이어’까지 나오는 등 퓨전이 성황인 시대인 것 같다”며 “퓨전은 오리지널이 아닌 ‘변주’인데, 변주의 시대가 끝나면 다시 오리지널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해품달 경제적 효과>
‘해품달’은 경제적 효과만 봐도 움직이는 기업 그 이상이었다. MBC가 벌어들인 광고 수익만 130억원에 달한다. 지난 3월15일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집계한 결과 해품달은 그간 방송된 프로그램 광고가 모두 ‘완판’돼 대박 매출을 기록했다. 본 방송은 회당 4억3000만원씩 20회 완판으로 86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고 재방송 역시 20회가 모두 팔려 25억4000만원을 기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해품달은 광고주들이 광고 효과가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추가로 부담하는 CM순서 지정 판매액까지 8억원에 달했고 제작진의 MBC 파업 참여로 긴급 편성된 스페셜 4편마저 완판되며 11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광고 수익은 시작에 불과하다. 현재 판권 판매가 진행 중인 해품달은 이미 일본ㆍ태국ㆍ홍콩 등 아시아 7개국과 역대 최고 금액으로 판권을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인기 작품들이 회당 10만달러(1억1000만원) 선에 팔린 것을 감안했을 때 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추가적으로 판권 계약이 이뤄지고 여기에 케이블 재판매, VOD판매까지 합하면 예상이 불가한 수준이다. 신드롬을 일으킨 이훤 역의 김수현을 비롯한 한가인ㆍ정일우 등 주연은 물론, 조연과 아역에 이르기까지 해품달에 출연한 모든 연기자들이 해품달 인기의 직접적 수혜자다.

대표적으로 김수현은 추가로 계약한 광고만 10여개로, 광고 수익만 40~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고 심지어 배용준이 대표로 있는 김수현의 소속사 키이스트는 해품달 방영 내내 주가가 오르는 등 파급효과도 상당했다.

여기에 드라마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이 음원 차트 1위를 싹쓸이하고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국화차, 꽃 편지지, 각종 자개용품 등 PPL로도 재미를 보는 등 파워를 과시했다.
정은궐 작가의 원작 소설이 6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제작사인 팬 엔터테인먼트 주가가 해품달 방영과 함께 급증하는 일도 있었다.

기사제공=한경비즈니스(제8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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