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슴사냥을 하기 위해 원을 그리면서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다. 그러던 도중에 한 사람의 눈에 토끼가 보였다. 그가 눈앞에 나타난 토끼를 잡기 위해 포위망에서 이탈해 토끼를 쫓아가는 순간 사슴은 그 구멍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18세기 계몽주의시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저술가인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기술한 이야기다. 이를 게임이론적 버전으로 재구성해 만든 것이 사슴사냥 게임(stag hunt game)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무리의 사냥꾼들이 커다란 사슴(stag) 한 마리를 추적했다. 그리고 드디어 사슴이 다니는 길을 발견했다. 만일 모든 사냥꾼들이 협력하면, 그들은 사슴을 잡아서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만약 그 사냥꾼 중 한 사람이라도 사슴에게 발견되거나, 또는 그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사슴은 도망갈 것이고, 결국 그들은 굶주리게 될 것이다.

사냥꾼들은 숨어서 사슴이 지나다니는 길을 지켰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사슴은 보이지 않고, 또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이 흘러도 사슴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슴은 매일 지나다니지는 않지만 사냥꾼들은 사슴이 반드시 그 길을 지나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토끼(hare)가 사슴이 지나다니는 길을 따라 지나가는 것을 모든 사냥꾼들이 봤다.

이때 만일 한 사냥꾼이 뛰쳐나와 토끼를 잡는다면 그는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면 포위망이 열려 사슴은 그 쪽으로 달아나버릴 것이고, 결국 토끼를 잡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굶주리게 된다.

사슴이 나타난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가운데 토끼가 나타났다. 이때 만일 그 사냥꾼이 토끼를 잡지 않고 기다린다면 다른 사냥꾼이 토끼를 잡을 수도 있다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두 가지 위험성(risk)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사슴이 결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 다른 하나는 내가 토끼를 잡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토끼를 잡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이다.”

이러한 리스크는 모든 사냥꾼들에게 동일하게 작용한다. 이런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어떤 한 사냥꾼이 사슴을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뛰쳐나가 토끼를 잡는다면 그는 토끼고기로 배를 채울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굶주려야 한다. 그 사람이 토끼를 잡으려 쫓아감에 따라 사슴이 놀라 구멍 뚫린 포위망을 이용해 도망가 버리기 때문이다.

사슴사냥 게임은 확실한 작은 이득의 보장과 보다 큰 사회적 이득 사이의 갈등관계를 설명하는 모형이다. 이에 사슴사냥 게임은 보증게임(assurance game), 조정게임(coordination game), 신뢰 딜레마(trust dilemma)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큰 이득을 포기하고 작은 이득에 집착하는 이유
경기자(사냥꾼) A, B가 사슴사냥을 한다고 가정하고 이득행렬(payoff matrix)을 만들어보자. 두 사람이 협력하는 경우 사슴을 잡아 두 사람 모두 3이라는 이득을 얻는다. 그러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협력하지 않고 토끼를 잡는다면 그 사람은 1을 얻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만일 경기자 A가 사슴을 쫓는 전략을 고수한다면 경기자 B는 토끼를 쫓아야 할 이유가 없다. 사슴을 쫓으면 3을 얻고 토끼를 쫓으면 1을 얻으므로 구태여 토끼를 쫓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기자 A, B가 모두 사슴을 쫓는 (사슴, 사슴) 전략조합은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을 이룬다.

게임이론에서 내쉬 균형이란 상대방이 현재의 전략을 고수했을 때 자신이 취하고 있는 현재의 전략을 바꾸고자 하는 유인이 없는 안정적인 상태 혹은 전략조합을 말한다.

이와 같이 서로 협력해 사회 전체적으로, 그리고 각 개인에게도 큰 이득이 돌아오는 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문제의 해결과정은 큰 사슴보다는 작은 토끼를 쫓는 양상을 띤다. 왜 이런 형상이 일어날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상대방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의 사슴사냥 게임에서 토끼가 나타났을 때 내가 토끼에 한 눈을 팔지 않고 사슴을 쫓을 때 과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지 믿지 못한다면 자신이 먼저 배반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 불신이 모든 문제의 밑바탕을 이룬다.

보다 큰 이득을 포기하고 작은 이득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미래보다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앞의 사슴사냥 게임에서 바로 눈앞의 토끼는 확실히 잡을 수 있지만 큰 사슴은 확실히 잡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어쩌다 당첨되면 10억원을 받을 수 있지만 당첨 확률이 매우 낮은 복권보다 현금 2만원을 선호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또한 반칙에 대한 제재수단이 없거나 또는 있다 하더라도 얻는 이득에 비해 미미하다면 반칙을 막을 수 없다. 따라서 반칙에 대해서는 반드시 응징해야 하고, 그 응징의 크기도 반칙을 저지르는 것이 손해가 될 정도가 돼야 한다.

우리사회에 반칙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제재수단이 없거나 있더라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반칙을 하면 반칙한 사람은 토끼를 얻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리고 사회의 총량적인 복지는 크게 떨어진다.

우리사회에서도 동반성장이니 공생발전이니 하는 말만 무성할 뿐 소득분배를 둘러싸고 갈등과 마찰이 그치지 않는 것은 모두 자기 눈앞의 토끼만 쫓기 때문이다. 서로 협력해 사슴을 잡을 생각은 안 하고 다른 사람이야 굶주리든 말든 자기 배만 채우기 위해 토끼를 잡으려 한다.

임진년에는 생생지락(生生之樂), 즉 ‘생명을 살리는 즐거움 또는 생업에 종사하는 즐거움’을 모든 국민들이 얻을 수 있도록 다 함께 힘을 모아 사슴을 잡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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