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다가 소파에 누워 깜빡 잠이 들었던 표 대리.
"여보, 그만 자고 일어나봐. 이거 좀 걸자고요."
아내가 일요일 꿀맛 같은 낮잠을 방해한다. 얼마 전에 찍은 가족사진 액자를 거실 벽에 걸겠다며 아이들까지 나서서 표 대리를 깨운다. 아내는 어느새 옆집에서 전동 드릴까지 빌려다 놓고, 집에 있는 공구 통을 꺼내 활짝 열어 놓았다.
탄탄한 시멘트벽에 구멍을 뚫기 위해 표 대리가 전동 드릴을 집어 들며 말한다.
"이거, 처음 써보는 거라 어색하네. 설명서 없어?"
아내가 집어 준 설명서를 읽고는 적당한 크기의 스크루를 드릴에 부착하고, 미리 벽에 찍어둔 세 개의 점에 맞춰 구멍을 뚫기 시작한다.
`웽~ 소리와 함께 구멍이 뚫리자, 표 대리는 연장통에서 굵고 긴 나사를 꺼낸다. 나사를 만지작거리는 표 대리를 보고 아들 녀석이 신기한 듯 물어온다.
"아빠, 이 못들은 다 머리에 엑스 표 모양이 있어요. 큰 못에도, 작은 못에도. 아, 또 이 못들은 그냥 줄이 하나씩 가있다."
호기심에 찬 아들에게 표 대리가 대답을 해준다.
"준이 드라이버 알지? 못 돌려 박을 때 쓰는. 그 엑스 표처럼 생긴 건 십자드라이버로 박는 못이고, 줄 하나 가있는 못은 일자 드라이버로 돌려서 박는 거야."
준이가 일자 드라이버를 꺼내 십자못에 맞춰보며 말을 한다.
"이 일자 드라이버로는 십자못을 박을 수가 없는 거예요? 큰 못은 될 것 같은데."
"아니야, 준아. 아무리 못이 크든 작든, 십자 크기는 똑같아. 그래야 드라이버 하나로 다 박을 수가 있지. 만약에 못 마다 십자 크기가 다 다르거나,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파여 있다면, 드라이버도 다 달라야 하니까 얼마나 불편하겠니?"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파스너 규격


표 대리가 아들에게 웃으며 대답하자 준이가 십자드라이버를 들어 모든 크기의 십자못에 맞춰본다.
"정말 그러네요. 신기하다. 그럼, 십자드라이버랑 이 못들은 나라마다 다 똑같은 거예요?" 라고 준이가 묻자,
"그럼. 미국이나, 독일이나, 일본이나 준이가 아는 모든 나라가 다 우리가 지금 쓰는 똑같은 연장들을 쓴단다. 그 공구 통에 들어있는 것들이 대부분 세계 공통으로 쓰이는 표준 기구들이야."
표 대리의 대답에 액자 거는 것을 지켜보던 아내가 갑자기 말을 꺼낸다.
"준아, 엄마랑 더 재밌는 얘기 해볼까? 그런 공구들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나 똑같이 공용으로 쓰이는 표준 규격들이 셀 수없이 많은데, 우리 한 번 같이 뭐가 있나 찾아보자." 하고는 냉장고에서 페트병을 꺼내들고 준이에게 열어 보인다.
"아, 맞다. 페트병이요. 저번에 콜라병 뚜껑 없어져서, 주스 병으로 닫았었어요. 꼭 맞던데."
준이가 신이 난 듯 말하자 아내도 아이처럼 신이 난 듯, 이번엔 입고 있던 트레이닝 점퍼의 지퍼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준이에게 웃음을 보낸다.
"아, 지퍼요, 지퍼. 옷이랑 가방에 다는 지퍼도 다 똑같아요."
준이도 재미있다는 듯 대답했다.
"엄마, 또 뭐가 더 있어요?"
준이의 질문에 아내가 집안을 둘러보다가 언뜻 생각이 나지 않자, "이번엔 준이가 생각해서 엄마한테 말 해줘 봐." 라며 부엌으로 들어간다.
액자 걸기가 끝나자 아내가 야채가 담긴 지퍼 백을 들고 나오며 말한다.
"준아, 이거. 이 지퍼 백도 표준 규격 맞겠지? 자, 그럼 계속 찾아보기다."

[표준 TIP]

매일 사용하는 각종 파스너의 중요성을 아시나요?

위의 이야기에 나오는 나사나 못, 일회용 지퍼 백, 병뚜껑, 의류의 지퍼 등 가정에서 쓰이는 각종 물건들은 물론이고, 자동차, 비행기, 선박, 철로, 의료기기, 그리고 각종 산업기계 등의 조립이나 건설에는 다양한 종류의 파스너가 쓰인다. 국어사전에선 `파스너`를 `분리되어 있는 것을 잠그는데 쓰는 기구` 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파스너의 규격이 표준화 되어있지 않고 제각기라면 우리 생활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불편했을까?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는 파스너의 규격을 전 세계 어디에서나 수용될 수 있는 조건으로 표준화하였고, 우리나라도 이에 부합하는 KS규격을 제정해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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