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화 한 약사법 개정에 식품업계 ‘고심’

최근 유통업계 키워드는 ESG경영이다. 특히 식품업계는 친환경 제품군을 확대하며 제품의 라벨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애고 있다. 그러나 이로인해 제품의 성분표와 같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도 축소하거나 사라지는 등 취약 계층 소비자를 위한 개선 활동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식품 점자표기율 37.7%에 그쳐

지난 9월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14개 식품생산업체에 생산하는 음료와 컵라면, 우유 등 제품 321개를 대상으로 점자표시 여부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14곳 중 9곳의 121개 제품(37.7%)에만 점자 표시가 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대상 7개 음료 업체 중에서는 롯데칠성음료 생산 제품의 점자 표기율이 64.5%, 4개 컵라면 업체 중에서는 오뚜기라면 제품의 점자 표기율이 63.2%로 각각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음료는 191개 제품 중 49.2%(94)에 점자 표시가 있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캔 음료는 89개 중 89.9%, 페트병은 102개 중 13.7%에 점자 표시가 있어 용기 재질에 따라 점자 표시율의 차이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컵라면은 90개 제품 중 28.9%, 우유는 40개 제품 중 서울우유의 3mL 제품에만 점자가 표시돼 음료보다 점자 표기율이 낮았다. 컵라면은 26개 제품 모두 제품명이나 제품명을 축약해 점자 표시를 했고 우유는 업체명을 표시했다.

점자 표시가 있는 121개 제품을 대상으로 표시 내용과 가독성 등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음료(94) 85.1%'음료''탄산'으로만 표기됐고 '칠성사이다' 같은 제품명을 표시한 제품은 14.9%에 불과했다.

식약처, 식품 점자 표기 가이드라인 배포

식품의 유통기한을 점자로 표시한 제품은 없어 시각장애인이 구매 후 보관 과정에서 변질된 식품을 섭취할 위험이 비()시각장애인보다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이에 당국도 문제를 인식하고 시각장애인 소비자의 보다 나은 상품 접근성을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선바 있다.

지난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국내 식품업체를 대상으로 식품 점자 표기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여기에는 시청각 장애인이 마트 등에서 식품을 살 때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는 점자와 음성·수어영상 변환코드(QR 코드)의 식품 표기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가이드라인에는 앞으로 들어갈 점자 정보에 제품명을 기본으로 포함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보관방법이나 주의사항 같은 나머지 정보는 필요 시 추가로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위치는 상표가 인쇄돼 있어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면에 담도록 했다.

또 가이드라인은 음성·수어영상 변환코드는 잉크, 각인, 소인 등을 사용해 지워지지 않게 표기해야 한다는 규정을 담았으며, 포장 특성상 인쇄가 불가피한 경우 스티커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변환코드에는 제품명, 내용, 업소명, 보관 방법, 알레르기 유발물질 등 5개 정보가 제공되며, 표기 위치는 점자 표기와 같다. 하지만 당국의 가이드라인 배포에도 불구하고 실제 식품 상품의 점자 표기율은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 관계자는 당국의 적극적인 권고에도 불구하고 시각 장애인 등을 위한 식품 상품의 점자 표기 등은 여전히 저조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나 취약 계층 소비자 배려를 위한 유통업계의 인식 제고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식품 점자 표기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약사법 개정에 일부 식품업계의 자발적 움직임

또한, 최근 약사법 개정에 따라 지정된 의약품·의약외품에도 점자표기를 의무화 했다. 이와같이 개정된 약사법 시행에 앞서 일부 식품업계가 먼저 점자표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롯데칠성은 2008년부터 시각장애인의 배려 차원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제품에 점자 표기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한국 소비자원의 조사에서도 롯데칠성은 생산 제품의 64.5%가 점자표기가 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음료 부문 점자표기율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오뚜기 역시 제조사로서 최초로 컵라면 용기의 95%에 점자 표기를 했으며, 자발적인 조치로 점자 표기 확대에 나서고 있다.

삼양식품 역시 점자 표기 용기면 제품을 선보인다. 삼양식품이 점자 표기 용기면을 출시하기로 한 것은 소비자로부터 시각장애인용 제품 출시 제안이 오면서 시작됐다.

삼양식품은 올해 상반기부터 점자 표기 용기면 출시를 준비했다. 용기 제작 업체에 점자와 외부 물 확인선 삽입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과 점자 표기 용기면을 공동 개발했다. 점자는 용기면 제품 하단에 삽입했다. 빠른 제품 확인을 위해 불닭볶음면은 불닭’, 삼양라면은 삼양으로 축약 표기했다.

삼양식품 관계자에 따르면 새로 출시되는 큰컵 불닭볶음면, 큰컵 삼양라면에 점자 표기를 적용하고, 추후 다른 제품들에도 점자표기를 확대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업체 입장에서는 비용적인 문제와 포장 공정에 있어서의 큰 문제가 있다고 알고 있다"며 말하며 "정부, 업체, 장애인 단체가 이 같은 주제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 하고,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심도 있게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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