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회에서의 왕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충효를 지고의 가치로 강조한 유교이념의 토대 위에 건설된 조선왕조에서는 특히 그러했다. 왕이 되면 얼마든지 호의호식 하면서 제멋대로 살 수 있는 위치인데, 이런 위치에 있는 군왕도 하기 싫은 공부를 했을까? 결론은 제대로 왕 노릇을 하려면 피나게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다. 왕을 공부시키는 제도가 경연(經筵)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예종(睿宗) 때 중국 송나라에서 도입되었으나,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왕조에 들어와 제도화되었다. 세종은 즉위하면서 경연을 정례화 하였고, 즉위한 뒤 약 20년 동안 매일 경연에 참석하였다. 수업은 하루에 3번 실시되었는데, 오전엔 조강, 정오에는 주강, 오후에는 석강이 시행되었다.

경연에 참석하는 경연관은 3정승을 포함하여 10명이며, 강의교재는 사서(四書)와 오경(五經) 및 역사책인 자치통감(資治通鑑)이 기본 텍스트였다. 수업방법은 먼저 한 사람이 원문(原文)을 소리 내어 읽고, 이를 국어로 번역한 다음, 그 의미를 설명하고 나면, 왕이 질문도 하고 다른 참석자들이 보충설명을 하는 형식이었다. 오늘날의 독서클럽과 유사한 방법이다.

강의가 끝난 다음에는 국정문제 등 현안문제도 협의하였다. 이와 같이 경연은 왕과 신하들이 옛 선현(先賢)들의 글을 읽고 토론하다가 국정에 대해서 논의하는 등 군신간의 소통의 자리였다.

왕이 경연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서 강제할 방법은 없었다. 참석할지 안 할지는 왕에게 달린 문제였다. 그런데 역사상 성군(聖君)으로 알려진 임금들은 경연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세종, 영조, 성종, 정조 등이 대표적인 군왕들이다. 특히 세종과 정조는 학식이 뛰어나 대신들이 쩔쩔 맬 정도였다고 한다.

반대로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와 폭정을 한 연산군은 아예 경연을 폐지해 버렸고, 광해군은 1년에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경연에 가장 관심이 없었던 왕은 선조였다. 율곡 이이는 선조에게 왜국의 침공을 예측해 끊임없이 조언을 했으나 선조는 끝내 듣지 않고 있다가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란을 당했다. 공부하지 않는 왕이 어떤 일을 당하고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선진적인 조직이 되려면 리더가 선행 학습이 돼야

‘중진국 함정’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2006년 세계은행이 최초로 사용한 용어로, 그 후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중진국 함정이란 개발도상국들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순조롭게 경제성장을 하다가,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수준에 이르면 경제성장이 정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중진국 수준까지는 올라왔으나 대부분 중진국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그런 상태로 머물러 있거나, 온갖 혼란으로 인해 오히려 후진국으로 전락해 버렸다.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 선진경제로 접어든 나라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이스라엘, 스페인 정도이다.

중진국이 되는 것과 선진국이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사회발전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자동차를 살 수 있는 소득이 생기는 것이 경제발전이라면 교통법규를 지키는 의식수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신사도의 향상이 사회발전이다.

사회발전은 다른 말로 하면 넒은 의미의 사회자본이 축적되는 것이다. 학자들이 중요하다고 들고 있는 사회자본의 제반요소를 하나의 변수로 환원하면 그 사회나 조직 구성원들의 ‘인적자본 수준’이다. 구성원들의 수준이 후진적인데 조직이 선진적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자들은 한 사회가 중진국함정을 벗어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중등교육’이라고 보고 있다. 중등교육은 중고등학교 교육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등학교 교육을 말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초등교육은 읽고, 쓰고, 셈하는 교육. 이른바 3R 교육에 중점을 둔다. 초등교육은 그 사회에서 살아가지 위한 기초교육이다.

고등학교 교육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본교육으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익힐 수 있는 학습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이다.

일반적으로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선진국으로 진입한 국가들의 고교 졸업비율이 대단히 높다. OECD 국가들의 고교 졸업비율은 70~80% 수준이나 중진국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라들의 고교 졸업비율은 겨우 30~35% 수준이다.

따라서 국가나 조직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리더가 우선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구성원들이 고등학교 졸업수준 이상의 교양을 갖추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한마디로 말귀를 알아듣고 긍정적인 학습의욕을 갖는 수준이다. 당신의 조직이 선진적인 조직이 되기를 원한다면, 구성원들을 말귀를 알아듣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하고, 학습조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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