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양극화 현상 뚜렷…비싸건 더 비싸게 싼 건 더 싸게

‘양극화’. 현재 유통업계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말이다.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소비심리가 조심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수혜를 얻은 업종과 피해 업종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실제 명품을 중심으로 한 프리미엄 제품과 초저가 제품들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은 반면 그렇지 못한 제품들은 매출절벽에 봉착한 모습이다. 소비자들이 가장 좋은 게 아니면 가장 저렴한 것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이에 유통가에서는 생존을 위해 비싼 건 더 비싸게 팔고 싼 건 더 싸게 파는 전략을 내놓고 있다.

‘잘 나가는’ 명품은 따로 있다

유통가에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보복소비와 기저효과 덕분이다. 특히 명품 소비가 크게 늘었다. 해외여행이 사실상 막히면서 그 돈을 명품을 사는데 썼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명품 중에서도 에루샤로 통하는 명품 3대장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은 매출이 급증한 반면 입문용으로 불리는 ‘생로랑·페레가모’는 매출이 감소하는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루이비통코리아유한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조468억원으로 전년 대비 33.4% 증가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각각 176.7%, 284.7% 급증한 1519억원, 703억원을 거뒀다.

에르메스코리아도 두 자릿수 성장세를 나타냈다. 작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191억원, 1334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1년 전보다 각각 15.8%, 15.9% 늘어난 수치다. 당기순이익도 15.8% 오른 986억원으로 집계됐다. 대표 제품인 ‘버킨백’과 ‘켈리백’은 수천만원대 가격을 호가하고 있지만 VIP이 아니면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루이비통 역시 지난해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루비비통은 지난해 1조467억원의 매출액을 기록, 전년(7846억원)보다 33.4%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519억원으로 176.7% 증가했으며 순이익도 703억원으로 284.6% 급증했다.

이러한 명품 브랜드들이 고성장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제품 가격 인상 때문이다.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가격 인상을 단행하는 고가 전략을 취하고 있다. 샤넬의 경우 작년 5월과 11월 주요 제품 가격을 두 차례 인상하자 매장문이 열리자마자 구매를 위해 달려가는 일명 ‘오픈런’이 일기도 했다. 루이비통도 작년 3월과 5월 두 차례 판매 가격을 올렸고 올해만도 5번이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에르메스 역시 마찬가지로 매년 국내 판매 가격을 올리고 있다. 그런가하면 3대 명품에 비해 가격대가 낮아 소위 입문 브랜드라 불리는 명품들은 성장세가 주춤해졌다. 오히려 실적이 감소한 브랜드도 있다.

입생로랑의 매출은 지난해 2019년보다 12% 감소한 1470억원에 그쳤고, 영업이익은 32% 줄어든 74억원에 그쳤다. 발렌시아가와 보테가베네타는 매출은 소폭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뒷걸음질쳤다. 발렌시아가는 지난해 1090억원의 매출을 기록 전년대비 13% 매출이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14% 감소한 54억원에 머물렀다.

보테가베네타는 전년동기 대비 13% 매출이 늘어난 1581억원을 기록했으나 영업이익은 12% 감소한 7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탈리아 브랜드 페라가모와 스페인 브랜드 토즈는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급감했다. 페라가모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1056억원, 45억원으로 각각 30%, 51% 급감했다. 토즈는 23% 줄어든 31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1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와 관련해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유로모니터는 “코로나19 이후로 명품을 판매하는 주요 창구로 이커머스(온라인쇼핑)가 급부상하면서 온라인 유통 전략을 잘 짠 브랜드 위주로 주목을 받는 편”이라고 분석했다.

라면 가격도 양극화, 380원 VS 1800원

다른 한편에서는 ‘라면’ 경쟁이 한창이다. 편의점 업체들은 300원대 초저가 라면을 내놓고 있는 반면 전통적인 라면 제조사들은 프리미엄 라면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는 것.

CU는 지난 4월 22일 BGF리테일의 통합 PB ‘헤이루(HEYROO)’를 통해 업계 최저가를 넘어 대형마트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갖춘 ‘헤이루 라면득템’을 출시했다.

‘헤이루 라면득템’ 다섯 봉지가 포장된 번들 가격이 1900원으로 봉지당 가격으로 따지면 기존 편의점 봉지라면 평균가의 1/4 수준인 380원이다. 업계 최저가다. 이는 이마트24가 지난 2019년 선보인 ‘민생라면’보다 10원 싸다. 이마트24는 지난 2019년 PB 민생 시리즈를 통해 390원 라면을 선보였고 누적 판매량 1500만개를 기록한 바 있다.

CU는 가격은 낮췄지만 맛과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로 라면을 만든 삼양에 생산을 맡겼다. 레시피 개발에도 BGF리테일 상품 기획자가 직접 참여해 수차례 수정을 거친 후 대중적인 맛의 쇠고기 국물라면을 개발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반해 전통 라면 제조사들은 프리미엄 제품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초저가 라면과 프리미엄 라면의 가격 차이만 4~5배까지 날 정도다.

풀무원식품이 선보인 ‘자연은 맛있다 정백홍’은 최근 1000만 봉지 판매기록을 달성했다. 작년 8월 출시 이후 6개월 만에 달성한 수치다. 특히 매장 시식 또는 빅모델 없이 입소문만으로 농심 앵그리 너구리에 이어 2020년 국물라면 신제품 중 소비자 구매 2위를 기록했다.

김종남 풀무원식품 자맛사업부 PM은 “코로나 확산으로 대형마트 등에서 시식코너 운영이 금지돼 온라인 랜선 시식회를 여는 등 어려움 많았다”면서도 “국물 라면 신제품 중 2위를 기록한 것은 소비자들의 재구매가 활발히 이뤄진 것이며 결국 ‘맛’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것”이라고 평했다.

이 제품의 가격은 1100원대로, 비건 인증을 받은 정면의 경우 비건 라면은 슴슴한 맛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칼칼한 매운맛과 진한 국물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얼큰한 맛이 일품인 홍면은 최근 배우 조인성이 반한 인생라면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또 백면 역시 바지락, 백합, 새우 등을 로스팅해 시원한 감칠맛이 일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남녀노소 고객층을 넓히고 있다.

농심과 오뚜기 역시 프리미엄 제품 라인을 확대하고 있다. 오뚜기는 지난 1월 ‘라면비책 닭개장면’을 출시한데 이어 최근에는 ‘고기짬뽕’을 선보였다. ‘라면비책’은 오뚜기의 새로운 가정간편식(HMR) 라면 브랜드로, 레토르트 파우치를 활용해 건더기를 라면에 얹어 먹는 형태다.

‘라면비책 고기짬뽕’은 치킨, 사골, 돈골 엑기스를 최적의 비율로 혼합해 라면비책만의 진한 짬뽕육수의 맛을 구현했으며, 큼지막한 돼지고기와 채소로 고기짬뽕의 국물맛을 더하고 건더기의 식감도 살렸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가격은 3입 멀티 5480원으로, 개당 1800원 수준이다.

프리미엄 라면 시장의 포문을 연 농심도 신라면 블랙을 통해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가장 최근 선보인 신라면 블랙 라인 신제품 ‘신라면블랙 두부김치’는 신라면블랙의 깊고 진한 국물에 두부김치찌개의 맛을 접목한 것이 특징이다. 신라면 블랙 두부김치는 기존 신라면블랙보다 비싼 1600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억눌려 있던 소비가 응축됐다 한 번에 폭발하면서 보복 소비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하지만 전반적으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생필품에서는 최저가를 쫓으며 가성비를 추구하고, 명품 등 과시적 소비를 위해 가심비를 고려하는 상반되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소비 양극화 현상은 계속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맥시멀리즘 VS 미니멀리즘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여파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필품 또한 일반형 대신 아주 크거나 혹은 아주 작은 사이즈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용량이 넉넉하면 자주 장을 봐야하는 수고로움을 덜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일회용 쓰레기 배출도 줄일 수 있어 인기다.

특히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 빈도가 많아지면서 대용량 주방세제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생활용품 전문 브랜드 생활공작소에 따르면 4ℓ 및 3ℓ 대용량 주방세제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26% 증가했다.

생활공작소 관계자는 “최근 홈쿡족, 집밥족 등 집에서 식사를 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생활공작소의 주방세제 역시 대용량 제품이 일반형 제품보다 더욱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며 “야채와 과일까지 세척할 수 있어 사용 빈도가 매우 높은 제품인 만큼 한 번에 구매하여 장기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3~4ℓ ‘짐승 용량’의 제품이 소비자들의 니즈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용량 식품 또한 인기를 얻고 있다. 오리온은 ▲꼬북칩 ▲포카칩 ▲오!감자 등 인기 스낵 3종의 ‘대용량 지퍼백’ 제품을 출시했다. 대용량 지퍼백은 기존 M 사이즈 대비 3배 이상 용량을 늘리고, 입구에 지퍼를 부착한 제품이다. 손쉽게 밀봉이 가능해 더욱 오래 제품의 바삭함을 유지할 수 있다.

쟈뎅은 대용량 디카페인 RTD 커피 ‘시그니처 디카페인 블랙 1.1ℓ’을 출시했다. 국내 대용량 RTD 시장의 첫 포문을 열었던 ‘시그니처 1.1ℓ’는 커피 전문점 수준의 원두커피 맛과 향을 구현한 제품이다. 깊고 풍부한 커피를 합리적인 가격에 간편하게 즐길 수 있어 출시 이후 지금까지 편의점 대표 RTD 커피로 독보적인 입지를 굳히고 있다. 새롭게 출시한 ‘디카페인 블랙’ 외 ‘아메리카노 블랙’, ‘아메리카노 스위트’, ‘로얄 헤이즐넛’ 제품군으로 준비돼 기호에 따라 즐길 수 있다. 이에 반해 저녁 9시 이후 영업 제한 조치로 실제 가정 내 주류 소비는 크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소용량 맥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가벼운 한잔으로 집콕 스트레스를 푸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어서다.

CU의 지난해 4분기 기준 전년 대비 맥주 판매량을 보면 330㎖의 경우 60.9% 증가해 같은 기간 전체 맥주 판매량 증가율(18.9%)보다 3배가량 높았다. 제품 종류도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5배가량 늘었다. GS25 역시 같은 기간 소용량 맥주 판매량이 29.2% 늘었다.

이에 주류 업체들은 소용량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칭따오(TSINGTAO)는 지난해 200㎖ 용량의 미니캔을 내놓았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귀여운 사이즈로, 혼자서도 남길 일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위스키 ‘패스포트’는 역시 최근 200㎖ 소용량을 출시하고, 소비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편의점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홈술·혼술 트렌드가 확대되면서 가정용 위스키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어 이 같이 출시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하이트진로도 지난해 160㎖의 진로 미니 팩소주를 출시, 한 달 만에 100만 팩 판매를 돌파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배달·포장용 시장을 고려해 진로 미니 팩소주 160㎖ 유흥용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에 맞춰 대용량 제품을 출시하는가 하면, 1코노미에 맞춰 저용량·소포장 제품을 선보이는 등 용량에 변화를 준 제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서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대용량 식품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작은 용량의 주류는 혼자 마시기 편리하고 휴대까지 용이해 홈술족과 혼술족은 물론 캠핑족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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