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SS) 중령으로 홀로코스트(Holocaust, 유대인 대학살)의 핵심멤버 중 한 사람인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을 이스라엘의 첩보기관인 모사드(MOSSAD) 요원들이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하여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공개재판을 하게 되었는데, 이 재판과정에서 아이히만을 보고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언을 만들어냈다.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는 유태인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고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유태인 친척이 있었던 탓에 반유태주의자도 아니었고, 유태인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정에선 자상한 아버지이자 성실한 남편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점은 아이히만은 자신이 하는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따져보지 않았으며, 상관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했다는 사실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의 지시를 받고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을 색출하여 수용소로 보내는 실무책임자였다.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유태인들을 수용소로 수송하는 열차가 출발시간을 지키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것은 상부의 지시였고, 그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은 추호도 자신이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상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아이히만뿐만 아니라 많은 나치 전범들이 법정에서 하나같이 한 말은 ‘상부에서 시켜서...’라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나치들은 천성적인 악마이고, 히틀러에게 미친 광신도들이며, 아마도 악귀에게 사로잡힌 정신병자들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실제로 저지른 악행에 비해 너무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홀로코스트 혐의로 기소된 그는 8개월 간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였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의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거나 어떤 악마적 동기를 가지고 유태인을 학살한 것이 아니라고 끈질기게 주장했다. 자신은 명령받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으며, 오직 상부의 명령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유태인으로 히틀러의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감금되었다가 풀려나 미국으로 망명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도 이 재판을 지켜봤다. 그녀는 아이히만의 재판 소식을 듣고 <뉴요커(The New Yorker)>라는 잡지의 특별취재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과정을 취재했다. 그녀는 재판을 지켜보면서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라 지극히 온순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는데 놀랐다. 아이히만은 ‘실제로 저지른 악행에 비해 너무도 평범했다. 그녀가 보기에 그는 피에 굶주린 악귀도, 냉혹한 악당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성, 이웃집 아저씨에 불과하였다.

그녀는 말한다. “아이히만은 사악하지도, 유태인을 증오하지도 않았다. 단지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서 관료적 의무를 기계적으로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다. 가정에서도 그는 아이들을 끔찍하게 돌보는 사람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내린 결론은 자기가 원하는 일의 의미를 전혀 생각해보지 않는 ‘반성적 사유의 결여’ 탓에 아이히만이 ‘냉철한 톱니바퀴 기술자(공무원)’가 되어 유태인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악행의 원천은 리더들에게 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고 1963년 <예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라는 저서를 출판하였다. 이 저서는 많은 논란을 불어 일으켰지만,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언을 만들어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그저 평범한 이웃 아저씨 같다는 인상을 받고, 그것이 더욱 소름끼쳤다. 아이히만은 전혀 특별한 인간이 아니었다. 어떤 이념에 함몰되거나 광분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되풀이 했다. 그리고 칸트(Kant)까지 인용하며 명령을 지키는 것이 도리하고 말했다. 비록 그러한 명령이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을 살육하는 행위일지라도! 자신이 저지른 일과 자신의 책임을 연결 짓지 못한 채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히만에게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냈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마찬가지로 우리 가운데 있다. 그리고 파시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일상성에 묻혀 “누구나 다 이러는데, 나 하나만 반대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는 명령받은 대로 하기만 하면 돼. 이건 내 책임이 아니야!” 등의 핑계를 대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만 둔다면, 평범하고 선량한 우리는 언제든지 악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나치처럼 끔찍한 악행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다수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도 악행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네트워커들이 이런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아이히만의 경우처럼, 악행의 원천은 리더들에게 있다. 리더들의 ‘사익추구’가 파트너들의 ‘생각 없음’과 맞물리면 사회의 지탄을 받는 악행이 저질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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