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론적 자연관(우주관, 세계관, 인간관)은 자연(세계, 우주, 인간)을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이는 물질로 보는 패러다임이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와 뉴턴(Isaac Newton)으로 대표되는 이런 자연관은 자연의 운동과 변화를 기계적인 인과관계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고, 자연을 생명이 없는 물질적 재료로만 보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우주는 정밀한 시계와 같으며, 사람도 여러 부분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기계장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뉴턴이 고전역학을 완성해 단 3개의 법칙으로 우주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데카르트의 주장은 더욱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한편 뉴턴의 방정식에 따라 물체의 초기조건(질량, 속도, 위치 등)을 알면 물체의 미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돼 결정론적 세계관(인생관)이 확립됐다.

이런 기계론적 자연관은 데카르트 이후 3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학문과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고, 현재도 우리 사고방식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자신도 모르게 이들이 만든 자연관의 지배를 받으며 이른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신봉하고 있다.

기계론적 자연관의 핵심은 자연의 운동과 변화를 기계적 인과관계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자연을 생명이 없는 물질적 재료로만 간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인간의 이성과 자연과학을 절대화했다. 흔히 이런 사고방식에 매몰된 사람들이 ‘과학적’ 또는 ‘비과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과학을 말하는 것이다. 즉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으면 과학적인 것이요, 그것이 없으면 무조건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일종의 과학종교를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

못난 갖바치 셋이 제갈량을 이긴다

기계론적 자연관은 필연적으로 환원주의(reductionism)로 귀착된다. 환원주의란 전체를 부분 부분으로 잘게 쪼개어 각 부분의 메커니즘(mechanism)을 이해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패러다임이다. 곧 아무리 복잡한 것이라도 그것을 작게 분해함으로써 기본적인 단순성에 도달해 그것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런 부분을 다시 합하여 전체로 환원시키면 복잡한 전체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패러다임이다.

환원주의는 복잡한 현상의 원인을 그것 전체로서가 아니라 보다 단순한 현상에서 찾으려는 것으로, 원래의 복잡한 구조와 속성이 각 부분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환원주의는 기계론적 자연관과 함께 근대과학의 중심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환원주의는 미시적인 각 부분의 이해와 설명에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

생물학의 예를 들어보자. 유물론적 환원주의자들은 생명현상을 그 생명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들의 물리적․화학적 설명으로 환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기계적이고 환원적인 접근방법은 생물에 대한 미시적 분석을 가능하게 해 분자와 세포를 발견하는 공헌을 했다.

환원주의가 과학과 학문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것은 틀림없지만 일정한 한계가 있다. 환원주의는 전체를 부분의 단순한 산술적 합으로 생각해 부분들 간의 상호작용을 간과하고,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모든 유기체와 조직은 단순히 부분의 산술적 합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을 잘게 쪼개면 단백질에 이르게 되는데,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모든 단백질을 용기(容器)에 넣고 섞는다고 해서 인간이 탄생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단백질을 이해한다고 생명현상과 인간을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양의학의 근본적인 바탕도 기계론적 세계관과 환원주의이다. 인체를 단순히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들과 장기(臟器)들의 단순한 집합체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부위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만 고치면 되는 걸로 인식하는 것이다. 각 장기들 간의 상호작용은 무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환원주의는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구화된 교육을 받아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기계론적 인간관에 젖어 있다. 예를 들면 조직 구성원 하나하나가 우수하면 조직 전체적으로도 우수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구성원들 간의 상호작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각 구성요소들을 기계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습조직이론의 대가인 피터 센게(Peter Senge) 교수는 IQ 130인 사람들을 모아놓아도 성과는 IQ 60밖에 안 될 수가 있다고 말한다. 조직에서 인간들의 상호작용 때문이다.

왜 어떤 집단은 구성원들의 능력을 합친 것보다 큰 성과를 이루는데, 어떤 집단은 합친 것보다 작아지는가? 한 연구에 의하면, 몇 개의 소품을 모아 높은 탑을 쌓는 경기에서 유치원생들이 MBA 대학원생들보다 무려 3배나 높게 쌓았다 한다. 제심합력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현상은 스포츠 경기 등 사회 도처에서 나타난다. 물론 네트워크마케팅에서도 나타난다. ‘못난 갖바치 셋이 제갈량을 이긴다’는 속담이 인간사회의 신비함을 말해준다. 최근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양자역학은 이러한 원리에 대한 자연과학적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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