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생필품은 최저가, 고가 제품에는 기꺼이 지갑 열어

올해는 식품과 생필품은 가성비를 따지는 대신 명품이나 프리미엄 가전처럼 고가 제품에는 오히려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플렉스하는 자린고비’ 소비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평소에는 삼각김밥 등으로 저렴하게 식사를 대체하지만 사고 싶은 명품이나 차·가구나 프리미엄 가전에는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것이다.

옥션과 G마켓을 운영하는 국내 최대 이커머스 이베이코리아가 지난 1월 9일부터 16일까지 일주일간 옥션 방문 고객 1915명을 대상으로 ‘2020년 소비심리 및 소비계획’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같이 나타났다.

거대한 소비 물결 ‘플렉스’

플렉스(Flex)는 사전적으로는 ‘구부리다’, ‘몸을 풀다’라는 뜻이지만, 1990년대 미국 힙합 문화에서 래퍼들이 부나 귀중품을 뽐내는 모습에서 유래돼 젊은 층을중심으로 ‘부나 귀중품을 과시하다, 뽐내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래퍼 염따가 노래가사에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라고 사용하며 유행하기 시작했고 배우 이동욱이 진행하는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에서 출연진들이 자기 자랑을 하며 플렉스라는 단어를 사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플렉스가 소비시장까지 흔들며 아르바이트하거나 용돈을 모아 명품을 사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플렉스하는 게 젊은이 사이에서 트렌드가 되고 있다. 끼니는 간단히 때우고 생필품은 최저가로 구매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가 점찍어둔 목표물에만 조준사격하듯 지갑을 여는 것이다.

이베이코리아는 이런 소비 형태에 대해 ‘플렉스 하는 자린고비’라고 정의했다. 이베이코리아가 지난달 소비자 191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이왕이면 싸고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는 상품군을 묻는 질문에는 4명 중 1명이 ‘생필품·생활용품(26%)’을 꼽았다. ‘식품’을 꼽는 응답자도 20%에 달하며 가성비 소비 성향을 보였다.

반대로 비싸도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는 품목으로는 명품을 포함한 ‘패션·뷰티(23%)’와 ‘디지털·가전(23%)’ 카테고리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어 식품(13%)과 가구·인테리어(12%) 순으로 나타났다. 성별로 나눠보면 여성은 ‘패션·뷰티(명품)’(25%)을 꼽은 반면, 남성은 ‘디지털·가전’(28%) 제품을 선택했다.

2020년 꼭 구매하고 싶은 단일 제품을 묻는 질문에는 남성은 ▲노트북 ▲TV ▲공기청정기 ▲태블릿 ▲청소기 등 주로 디지털·가전 제품을 꼽았다. 여성은 ▲건조기 ▲냉장고 ▲의류관리기 ▲여행상품 ▲명품가방을 택했다.

실제로 이런 트렌드는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NS홈쇼핑은 최근 ‘편리미엄(편리+프리미엄)’상품 특집전 ‘편리N홈’특집 방송을 내보냈으며 스타벅스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리저브’ 매장이 상반기 중 100개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생활가전, 특히 프리미엄 가전의 매출 증가세를 올해도 유지하기 위해 프리미엄 전략을 선택했다. 프리미엄 TV인 QLED TV(삼성)와 OLED TV(LG) 등은 물론 건조기·의류 관리기, 냉장고, 청소기 등 다양한 생활가전 분야에서 프리미엄 모델을 확대하고 신제품을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이정엽 이베이코리아 마케팅 본부장은 “비교적 단가가 낮은 필수구매 품목에 돈을 아끼는 대신 프리미엄을 내세운 고가제품에는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른바 ‘일점호화형 소비심리’를 엿볼 수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지출계획은 반대의 결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심리와 현실소비 사이에 괴리가 큰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만족하면 그게 바로 플렉스!

이러한 플렉스 소비를 ‘과소비’라 여기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 또한 옛날 이야기가 됐다. 구인구직사이트 사람인은 지난 1월14일부터 1월 27일까지 20~30대 3064명을 대상으로 ‘플렉스 소비문화’에 대한 설문을 진행한 결과 2명 중 1명은 고가의 상품에 돈을 쓰면서 자랑하는 소비 형태인 ‘플렉스 소비’ 트렌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설문 응답자들이 플렉스 소비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로는 ‘자기만족이 중요해서(52.6%, 복수응답)’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그 뒤로 ▲즐기는 것도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해서(43.2%) ▲스트레스 해소에 좋을 것 같아서(34.8%)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 생각해서(32.2%) ▲삶에 자극이 되어서(22.2%) ▲멋있어 보여서(7.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 중 절반 이상(54.5%)은 앞으로 플렉스 소비를 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플렉스하고 싶은 것으로는 ‘고가의 명품(40.8%, 복수응답)’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세계 여행(36.7%) ▲음식(27%) ▲자동차(24.6%) ▲집·땅 등의 부동산(23.2%) ▲전자기기(21.6%%) 등의 순이었다.

실제로 플렉스를 해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 중 26.7%로, 이들이 한 해 동안 플렉스로 지출한 비용은 평균 840만원이었다. 구체적으로는 ‘500만원 미만(66%)’이 가장 많았고 ▲500만원 이상~1000만원(17.6%) ▲1000만원이상~1500만원 미만(6.3%) ▲1500만원 이상~2000만원 미만(4%) ▲2000만원 이상~2500만원 미만(2.6%) 순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소비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사소한 물건 하나를 구매하더라도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제품을 고르려고 한다”면서 “이 같은 라이프스타일 등을 감안하면 플렉스 소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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