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윤동주 시인의 <소년>이다.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지기 전에 깊은 가을을 만나볼 일이다. 가을은 여느 계절에 비해 턱없이 짧다.

가을 정취가 듬뿍, 물향기수목원

경기도립 물향기수목원(이하 수목원)이 자리한 곳은 예로부터 ‘물이 맑은 곳’이라 하여 ‘수청동’이라 불렀다. 지하철 1호선 오산대역과 가까워 서울에서도 1시간 안팎이면 닿는다. 경기도 임업시험장 내에 조성된 10만 평 규모의 이곳은 테마에 따라 구역을 19곳으로 나눠, 1,600여 종의 식물이 한울타리에서 사계절을 보낸다. 이맘때 수목원을 찾는다면 절정에 다다른 계절감을 느낄 수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토피어리원의 다채로운 수목들이 먼저 반긴다. 공룡, 우주선 등 동심을 자극하는 다채로운 모양으로 가꿔놓아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가을 정취가 물씬한 곳을 찾는다면 작은 개울 위에 있는 아치형 목교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이곳에 서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한눈에 보이고 개울 너머엔 작은 연못이 자리한다. 목교를 건너 숲속에 놓인 데크를 따라 숲길 산책을 즐긴다. 화려한 색을 뽐내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이미 겨울 준비에 나선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깊은 동면에 들어간 듯하다. 길 가장자리에 소나무를 심어 놓은 소나무원은 수목원이 자랑하는 산책코스다. 구불구불한 소나무사이로 빛 한줌이 떨어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인생사진에나 나올법한 모습이다.

소나무원을 지나 왼쪽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이 길을 단풍나무원길이라 부른다. 아기손바닥처럼 작고 앙증맞은 당단풍나무를 비롯해 핏빛처럼 붉거나 개나리꽃처럼 샛노란 단풍들이 보는 이의 가슴을 들뜨게 한다. 유실수원에는 대롱대롱 매달린 감나무가 서정미를 더하고, 대추나무에는 홍조를 띈 대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그 외에 만경원, 중부지역자생원, 분재원, 습지생태원, 생태학습원 등 다양한 주제원이 순차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수목원 전체를 꼼꼼히 돌아보려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입이 즐거운 야(夜)한 시장, 오색시장

오색시장은 지금으로부터 226년 전, 1792년(정조 16) 발간된 《화성궐리지》에 소개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시장 분위기는 옛날에 머물지 않고 젊은 감각으로 똘똘 뭉쳤다.

오색시장은 이름처럼 빨강·초록·노랑·주황·보라 5가지 색깔로 장터를 구분한다. 빨강길은 시장에서 가장 큰 길이다. 음식, 의류, 생활용품 등 다양한 상품들이 모여 있어 시장 구경에 재미를 더한다. 초록길에는 싱싱한 야채와 과일, 반찬가게가 많다. 미소거리라 불리는 노랑길에는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짜는 방앗간들이 모여 있어 구수한 향이 진동한다. 식당이 많은 파랑길에는 오랜 전통만큼이나 깊은 손맛을 자랑하는 숨은 맛집들이 여러 곳 있다. 맘스거리라 불리는 보라색길은 평소에 한산하다가 장날(3·8일)이 되면 외부에서 장꾼들이 거리에 좌판을 깔고 손님을 맞이한다.

오색시장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배경에는 청년 셀러들과 상인들이 어우러져서 운영하는 야(夜)시장이 한몫했다. 다양한 이색 먹거리와 오색시장이 개발한 수제맥주를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장소는 오색시장 빨강길 야시장 골목, 시간은 매주 금·토요일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다. 오색시장은 수제맥주로 명성이 자자하다. 상인들과 맥주 전문가들이 모여 맥주공방을 운영하고 레시피를 공유한다. 자체 개발한 맥주 브랜드 ‘까마귀 브루잉’을 마실 수 있는 펍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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