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 구제역,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조류독감)…. 동물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다. 소와 돼지 그리고 닭을 모두 식용으로 애용하는 대한민국의 소비자들은 동물전염병의 발생과 확산 여부에 따라서 널뛰는 육류가격에 혼란스럽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으로 돼지고기 가격이 급등락 한다. 조류독감이 퍼지면 닭을 구하기가 어려워 치맥을 포기해야하는 사태를 걱정한다. 소고기도 구제역의 방역이 뚫리면 가격이 치솟았던 경험도 있다. 어제보다 비싼 육류가격에 오늘의 지갑을 닫느냐 마느냐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 동물전염병에 대한 걱정이 수시로 침범(?)하면서 만들어진 트라우마가 남았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안심 먹거리’의 추구라는 청구서를 내놓는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내서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지난 9월 16일 경기도 파주에서 의심 신고가 들어온 것이 시작이다. 김포·연천·강화 등 경기·인천 접경 지역까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100% 폐사율의 치명적인 동물전염병의 확산이었다. 무엇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번지면서 축산 농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초유의 발병이어서였다. 강화도의 경우는 3만여 마리의 도내 돼지 전부가 살처분 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집중 발생한 파주·김포·연천에서는 관내 모든 돼지를 일단 수매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를 거부하거나 도축에 적합하지 않은 개체는 역시 살처분 대상이다. 이 같은 대처 속에서 발병 후 한 달여 기간 동안에만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살처분된 돼지가 모두 15만5000여마리에 달한다.

살처분 대상 돼지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내다팔 돼지가 갑자기 사라졌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지역의 상당수 축산 농가들은 생업의 터전이 뿌리 채 뽑힐 수도 있다는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돈육제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자영업자와 유통업체들도 유탄을 피할 수 없었다.

먼저 찾아 온 것은 돼지고기 가격의 폭등이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첫 발생일에 돼지고기 1kg의 도매가격은 4558원이었다. 그런데 이틀 만에 6201원까지 치솟았다. 소비자들에게 돼지고기는 지난 2017년 구제역이 재발했을 때도 삼겹살 100g당 가격이 2000원을 넘을 정도로 껑충 뛰었던 기억이 생생했다. 삼겹살이 금(金)겹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소비자들의 걱정은 근거가 있다. 우리나라가 채소보다 육류 섭취량이 빠르게 늘고 있는 데다 돈육 비중도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돈육 소비량은 30.1㎏으로 전 세계 3위 수준이다. 1위 유럽연합(35.5㎏), 2위 중국(30.4㎏)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2010년만 해도 우리나라 돈육 소비량은 세계 10위권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돼지고기 소비량이 크게 늘었다.

농식품부가 집계한 지난해 1인당 육류 소비량을 봐도 돼지고기 27㎏(50%), 닭고기 14.2㎏(26.4%), 소고기 12.7㎏(23.6%) 순으로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다.

전국의 돼지 사육두수는 1206만(9월말 기준)마리로 파악된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후 한 달 동안에만 살처분 된 돼지 수가 15만 마리를 넘었다. 전국 사육 돼지의 1% 이상이 살처분 된 셈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육류 수급 면에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직후 돼지고기 가격이 급등한 것이 당연하다.

돼지열병·구제역·조류독감 ‘악몽’

돼지고기는 소비량의 90% 이상이 국산이어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내 반전이 일어났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가 지속되면서 돼지가격이 폭락했다. 국내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10월 14일 현재 1㎏당 3030원에 그쳤다. 9월 평균 4791원보다 36.8%나 떨어진 상태다. 지난해 같은 기간 가격 3911원과 비교해도 22.9% 낮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안전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높아지면서 돼지고기보다는 닭고기와 소고기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라며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돼지고기 소비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일시이동중지명령 해제로 공급은 단기간에 늘다보니 가격 하락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도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이후 일시이동중지명령과 권역화 통제 조치 등 여러 가지 조치를 내리다 보니 도매시장과 경매장에서 가격이 급등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격 급등 못지않은 문제가 돼지고기 기피현상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현실화된 것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바이러스는 인체에 감염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막연한 불안감이 소비위축을 만들어냈다. 돼지가격 하락은 축산농가에도 이중고를 안겼다. 도매가 하락으로 매출이 급감하게 된 일반 축산농가는 물론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살처분 결정이 내려진 축산농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현재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한 살처분 보상금은 당일 시세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가격이 내려갈수록 살처분 농가가 손에 쥐는 돈도 비례해서 줄어드는 구조다. 축산농가에서 ‘살처분 보상금 하한선’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국내 육류 시장은 아프리카돼지열병, 구제역, 조류독감 등 대형 사태가 생길 때마다 가격이 많게는 두 배 이상 급등하거나 반 토막 나기도 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특정 육류에 편중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돼지·닭·소고기 소비 비중이 그런 대로 ‘삼각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이상가격이 1년 이상 오래 지속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돼지고기 값이 껑충 뛰면 닭고기 소비가 늘어나는 식으로 나름대로 시장 기능이 작동했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이후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온 돼지를 하루아침에 땅에 묻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축산농가는 자연스레 지난 2011년 겪은 악몽을 떠올렸다. 우리나라 동물전염병 역사상 최악의 피해를 가져왔던 ‘구제역 파동’이다.

당시 구제역은 2010년 11월 28일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생했다. 구제역이 번진 지역이 11개 시도 75개 시군에 달했다. 2011년 3월 24일 대한민국 정부는 구제역이 종식되었음을 선언했지만 4월 중순에 영천시에서 일부 돼지가 구제역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는 등 혼돈이 지속됐다. 이 구제역은 서울특별시, 전라남도, 전라북도, 제주특별자치도를 제외한 전국에 확산됐다. 살처분 피해액은 3조원이었고 350만 마리 이상의 동물이 살처분 됐다.

가히 ‘대재앙’에 비견될만한 일이었다. 이 같은 ‘대재앙’은 동물 윤리, 물가 문제, 2차 오염 문제 등 지금까지도 공장식 축산업과 육류중심 식습관문화 전반에 여진을 남겨놓았다.

동물전염병, 수요공급 ‘불안정’ 확산

구제역은 다 자란 동물의 경우 치사율이 5~10%에 불과하고 전염된 동물도 며칠 앓고 나면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제역에 걸린 동물이 인간에게 해를 미치는 것도 아니다. 학계에서는 구제역에 감염된 동물이라도 50도 이상에서 익혀먹으면 아무 탈이 없다고 설명한다. 치사율도 낮고, 인간에 해도 없는 구제역이 지금과 같이 위험한 질병으로 분류되는 것은 경제적 이유에서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데다 구제역에 감염되면 젖소의 경우 우유 생산량이 떨어지고 일반소의 경우 체중이 감소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국제동물보건기구에 의해 발생 즉시 해당국 동물과 축산물의 수출이 중단된다. 수입국 역시 수입을 즉시 중단할 수 있다.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가지고 있어야 우리 축산물을 수출할 수 있고, 수입국과의 교역협상에서도 불리한 위치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구제역과 같은 동물전염병은 축산물 수출량 감소로 국제수지를 악화시킬 수 있다. 또 방역 및 살처분 처리 비용이나 피해 농가 보조금 등 많은 사회적 비용 등을 유발한다. 아울러 동물전염병 발생은 축산물 공급량 감소로 인한 가격 상승으로 축산물 소비를 위축시켜 직·간접적으로 축산 농가의 소득 불안정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지난 2016년 겨울 전국 농가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조류독감도 축산농가와 유통업계, 자영업자에게 잊히지 않는 상처로 남은 동물전염병 사태다. 당시 조류독감으로 인해 가금류 1496만여 마리가 살처분 됐다. 살처분 개체수로는 구제역 파동을 뛰어넘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특히 산란계 농가의 피해가 매우 컸다. 그해 한판(30개)당 5400원 정도를 유지하던 계란 값이 약 9500원까지 상승했다. 또 조류독감이 돌면서 전국 치킨집의 10%가 문을 닫았다. 닭을 주 메뉴로 하는 자영업자에게 악몽이 됐다.

업계 전문가는 “1인당 국민 소득의 증가와 외식산업의 성장으로 우리나라의 식품 소비 행태는 서구화되고 있어서 육류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며 “소비자는 축산물 가격 변동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식품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 증가로 동물전염병 발생은 즉각적으로 축산물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동물전염병 발생은 직접적으로 축산물 공급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수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를테면 동물전염병 발생은 살처분으로 인해 산지단계에서의 축산물 공급량을 감소시켜 산지 및 도매가격을 하락시키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소매단계에서는 동물전염병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으로 축산물 수요가 하락해 소매가격을 하락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는 축산물 수직적 유통단계에 존재하는 산지가격, 도매가격, 소매가격의 관계가 선형적(선처럼 길게 일렬로 나아가는)인 형태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동물전염병 발생정도에 따라서 가격 관계가 구분돼 비선형적(뒤죽박죽)이라는 의미다.

축산물 유통단계별 가격들의 관계가 동물전염병 발생정도에 따라 비선형적인 형태를 가진다면, 각 유통단계별 가격의 변동성이 커지게 돼 전체 유통단계에서의 가격 변동성이 심화될 수 있다. 이는 동물전염병과 관련된 축산물 가격 안정화 정책의 효과를 제고시키기 위하여 동물전염병 발생정도에 따라 정책을 단계별로 구분해 시행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방역+육류소비 촉진 ‘필요’

겨울이 다가오면서 정부는 구제역과 조류독감의 방역에 다시 나서고 있다. 올해는 특히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과 함께 진행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농식품부는 구제역·조류독감 발생 위험이 높은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10월부터 내년 2월까지(5개월)를 특별방역대책기간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최근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 방역조치를 지속 추진하면서 구제역·조류독감 발생 예방에도 총력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특별방역대책으로 구제역 재발 방지를 목표로 백신 접종과 사후관리를 강화하고 밀집단지 등 취약대상 집중 점검, 신형 진단키트 현장 도입 확대 등 강화된 방역대책을 추진한다.

우선 전국 소·염소를 대상으로 연 2회(2019년11월·2020년4월) 일제 백신접종을 하고, 사육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돼지(약 6개월)에 대해서는 과거 발생 등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보강 접종을 실시한다.

또 백신 접종 사후관리를 위해 소와 돼지에 대한 백신 항체검사를 확대 실시하는 한편, 구제역 발생에 대비해 백신 비축량을 확대한다. 조류독감 발생 예방을 위해서는 철새 예찰을 확대하고 가금농가별 방역 취약요소를 집중 관리하는 한편, 위험농가 대상 사육제한(휴지기)을 실시하는 등 예방적 방역대책을 집중 추진한다.

전국 철새도래지(96개소)에 대한 예찰을 실시하고 검사물량을 지난 동절기 대비 8% 확대한다. 민관 합동 철새 정보망을 구축해 철새 도래 정보와 국내 이동 정보를 상시 파악하기로 했다. ‘철새정보 알림시스템’을 운영해 야생조류 조류인플루엔자 항원 검출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가금농가 등에 송부하는 등 철새에 대한 방역관리도 강화한다.

이 같은 방역이 무엇보다 최우선이겠지만 축산농가와 유통·자영업자에게는 육류의 소비 촉진이 되레 필요한 시간이 됐다. 유통업체들은 먼저 나섰다. 당면 현안인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과 관련해 대형마트들은 돼지고기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일제히 할인행사를 진행한 것이다. 이마트는 10월 중에 1등급 이상인 국내산 냉장 삼겹살과 목살을 기존 가격보다 15% 저렴한 100g당 1680원에 판매했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도 같은 기간 냉장 삼겹살과 목살을 각각 1680원, 1690원에 판매한다고 밝혔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는 안심 먹거리를 대대적으로 늘리기로 했다. 한우는 친환경 농법으로 사육한 제주 제동목장의 상품을 중심으로 안성마춤한우 농협 등 전국의 무항생제 농가에서 엄선한 친환경 한우를 소개하고 있다. 돼지고기 역시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의 무항생제·동물복지 인증 상품을 엄선해 소개하며 고객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식품담당 임원은 “안심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고객들이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상품을 확대하고자 한다”며 “친환경·무항생제 농가 지속 발굴해 향후 60% 이상 상품비중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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