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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대한 복종①
  • 이성연 애터미경제연구소장
  • 승인 2019.05.0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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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SS) 중령으로 홀로코스트(Holocaust)의 핵심멤버 중 한 사람인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을 이스라엘의 첩보기관인 모사드(MOSSAD) 요원들이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해 1961년 4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공개재판을 하게 됐다.

유태인으로 히틀러의 게슈타포에게 체포돼 감금됐다가 풀려나 미국으로 망명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도 이 재판을 지켜봤다. 그녀는 재판을 지켜보면서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라 지극히 온순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는데 놀랐다. 아이히만은 실제로 저지른 악행에 비해 너무도 평범했다. 그녀가 보기에 그는 피에 굶주린 악귀도, 냉혹한 악당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성, 이웃집 아저씨에 불과했다. 그녀는 말했다. “아이히만은 사악하지도, 유태인을 증오하지도 않았다. 단지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서 관료적 의무를 기계적으로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다. 가정에서도 그는 아이들을 끔찍하게 돌보는 사람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내린 결론은 자기가 원하는 일의 의미를 전혀 생각해보지 않는 ‘반성적 사유의 결여’ 탓에 아이히만이 ‘냉철한 톱니바퀴 기술자(공무원)’가 돼 유태인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고 1963년 <예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라는 저서를 출판했다. 이 저서는 많은 논란을 불어 일으켰지만,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언을 만들어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그저 평범한 이웃 아저씨 같다는 인상을 받고, 그것이 더욱 소름끼쳤다. 아이히만은 전혀 특별한 인간이 아니었다. 어떤 이념에 함몰되거나 광분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되풀이 했다. 그리고 칸트(I. Kant)까지 인용하며 명령을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다. 비록 그러한 명령이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을 살육하는 행위일지라도! 자신이 저지른 일과 자신의 책임을 연결 짓지 못한 채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히만에게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냈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마찬가지로 우리 가운데 있다. 그리고 파시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일상성에 묻혀 ‘누구나 다 이러는데, 나 하나만 반대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는 명령받은 대로 하기만 하면
돼. 이건 내 책임이 아니야!’ 등의 핑계를 대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만 둔다면 평범하고 선량한 우리는 언제든지 악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평범한 인간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출판하자 유대인 공동체에서는 소동과 분노가 일어났다. 심지어는 가까운 친구들로부터도 엄청난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비난의 중심에 선 개념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것이었다. 아렌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히만이 저지른 흉악한 악행은 범죄 의도를 가지고 사전에 고안했거나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이히만 자신은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인데, 그가 처한 환경이 그런 행동을 하도록 했을 뿐이다.

이런 논리가 맞다면 유럽과 영미(英美) 법학의 기본 철학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어떤 특별한 것, 예를 들면 악마적인 성격이나 광신적인 정신상태도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정상적’이거나 ‘평범’했다. 어떤 국가에
서나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획된 ‘살인’을 저질렀을 때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살인을 저질렀을 때, 즉 ‘과실치사’를 일으켰을 때는 그 죄질이 크게 다르다.

한나 아렌트가 관찰한 바로는 아이히만은 후자에 해당하는 범죄자였다. 한나 아렌트의 이런 견해에 유대인들은 분노하고 시위까지 벌였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출판한지 10년이 지나 <사회연구(Social Research)>라는 저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수년 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해 보고를 하면서 나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는 어떠한 이론이나 사상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아주 사실적인 어떤 것,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악행의 현상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었다.

이 악행은 악행자의 어떤 특정한 약점이나 병리학적 측면, 또는 이데올로기적 확신으로 그 근원을 따질 수 없는 것으로,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징은 아마도 ‘특별한 정도의 천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또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또 그에 앞서 있었던 경찰 심문에서 보인 그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에서 사람들이 탐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특징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흥미로운, 아주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끔찍한 범행의 원인이 그의 인격적 결함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단지 상관의 명령을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따른 데서 비롯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시 말하면 ‘비판적 사고’와 ‘반성적 사고’의 결여가 평범한 인간을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권위를 가진 상관의 부당한 명령과 부하들의 ‘맹목적 복종’이 잔혹한 범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연 애터미경제연구소장  nexteconomy@nex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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