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을 조선왕조 5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꼽는 데는 아마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세종의 업적도 황희와 맹사성이라는 탁월한 재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세종은 과로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황희와 맹사성 같은 유능한 인재를 등용해 대소사(大小事)를 맡아 처리하도록 했다.

그런데 황희와 맹사성은 성품이 달랐다. 황희가 분명하고 강직했다면 맹사성은 인자하고 부드럽고 섬세했다. 그래서 세종은 과단성과 정확성이 필요한 인사, 행정, 군사 등의 업무는 황희에게 맡겼고, 부드러움이 필요한 교육과 제도정비, 예악, 과거시험 등은 맹사성에게 맡겼다.

황희와 맹사성은 맡은 일은 달랐지만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고 공사(公私)를 명확하게 구분했으며 매우 청빈하게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 맹사성은 누구인가? 맹사성(孟思誠)은 고려말 조선초의 유학자로서 문신이자 정치인이었다. 고려말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 맹희도(孟希道)의 아들이며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이다. 이와 같이 맹사성은 고려의 명문세가(名門世家) 출신이다. 온양에 있는 맹사성의 고택(古宅)은 바로 최영 장군이 살던 집을 물려받은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성계가 최영 장군을 죽이고 고려를 멸망시킨 후 조선을 세웠다. 고려 명문귀족의 후예인 맹사성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맹사성은 고려에서 27세 때인 1386년(우왕 12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고려의 관료로서 일했다. 이런 그가 절개를 꺾고 새로운 왕조에서 다시 관리가 돼야 하는가? 더군다나 처조부인 최영 장군을 죽인 이성계 밑에서 벼슬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처럼 절개를 지키다가 죽어야 하는가? 아마 맹사성의 심정은 착잡했을 것이다.

맹사성은 다양한 각도에서 자신의 처신문제를 생각해봤을 것이다. 오늘날 개념으로는 비판적 사고이다. 그는 결국 포은처럼 부질없이 죽거나 권력을 탐해 파당에 가담하거나, 부귀영화를 위해 옳지 않은 일을 눈감아 주면서 재물을 쌓는 삶을 사는 대신 철저하게 백성을 위해 살기로 했다.

그의 청빈과 겸손, 그리고 어떤 정치세력에도 휩쓸리지 않고 옳은 일을 해나가기에 힘쓸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결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판적 사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고방식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란 의사결정을 해야 할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감정, 선입견, 편견 및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거나 권위에 맹종하지 않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평가·분류해 최적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사고과정을 말한다. 즉 객관적 증거에 비춰 문제를 비교·검토·분석·평가하고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판단에 따라 결론을 맺거나 행동하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사회에서는 ‘비판’을 ‘비난’과 혼동해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두 용어의 개념은 전혀 다르다. 사
전적(辭典的) 의미를 보면, 비난(非難)은 ‘남의 잘못이나 흠을 책잡아 나쁘게 말함’이고, 비판(批判)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밝힘’이다.

그러니까 비난은 상대방의 약점이나 실수를 트집 잡아 자신이나 파당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한 행위인 반면에, 비판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행위이다. 만약에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는다면 권위에 맹종하거나 유행에 휩쓸려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비판적 사고는 어떻게 하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따지는 것이다. 따라서 비판적 사고에 대한 교육이 돼있지 않은 사회에서는 부정부패가 심하고 사기와 거짓말이 난무한다. 모두 어떻게 하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따지기 때문에 이익만 된다면 편법이든 탈법이든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저지르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는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판적 사고는 자신의 사고에 대한 의식적인 평가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더 효과적으로 사고하기 위해 자신의 사고과정을 돌아보고 조절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환상과 독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하여 자기성찰을 하지 않는 사람, 즉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비판적 사고를 할 수가 없다.

한편 비판적 사고는 사물을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비판적 사고는 곧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고방식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과정에 따라 나름대로의 준거틀(frame of reference)을 가지고 사물을 판단한다. 따라서 준거틀이 다르면 같은 사물이나 사안이라도 다른 시각에서 본다. 이것은 맞느냐 틀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다.

서로 다른 판단과 견해를 상대방이 나와 같지 않으니 틀렸다고 생각하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 우리사회에서 지역, 정파, 세대, 계층 간에 대화와 타협보다는 갈등과 분쟁이 그치지 않는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집단은 틀렸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또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따지는 비판적 사고는 하지 않고 어떻게 하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만 따지기 때문이다.

네트워커들도 비판적 사고를 해야만 한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정보가 넘쳐남에 따라 어떤 정보가 사실이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분별하기가 어렵게 됐다.

특히 네트워크마케팅에 진입하는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네트워커들에게 비판적 사고는 매우 중요한 사고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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