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소중한 너라서>


이제는 너의 있는 그대로를 부정하지 말아줘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널 맞추지도 말아줘. 
너인 채로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충분히 빛나고 있으니까. 
이제는 너의 색을 지켜주는 거야. 그렇게 사랑해주는 거야. 
<본문 중에서>


당신은 있는 그대로도 아름다운 존재다. 굳이 체중을 줄이지 않아도 비싼 화장품을 바르지 않아도 된다. 배가 불룩 나온 체로도 뾰루지가 올라온 피부도, 있는 그대로도 아름다운 당신이다.
그동안 우리는 외부에서 정한 아름다움의 기준이 정답인 양 살아왔다. 특히 탄력 있는 몸매, 동안 페이스 등 외모에 대한 기준을 아름다움에 척도로 여기며 살았다. 그리고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나를 구겼다.

실제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목표 체중을 달성했을 때,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었을 때 등 만족감에서 오는 자신감을 느껴봤다. 그리고 그 만족감에서 오는 자신감을 자존감을 키우는 도구로 활용했다. 하지만 반대로 최근 체중이 많이 늘었다 던지, 새로 산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그동안 키워왔던 패스트 자존감은 바닥을 향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가.

누구나 아름다움을 갈망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의 기준은 어느 누구도 정의할 수 없다. 감히 어느 누구도 아름다움의 기준을 세울 자격도, 아니 딱히 기준을 정할 이유도 없다는 말이다. 나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나만이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내면의 만족에서 탄생한 내가 만든 나만의 향, 나만의 색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설사 다른 어떤 누군가가 일반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에 부응하지 못한 합리화라고 단정 짓는다면, 편하게 살기 위한 극약처방이라고 비판한다면 그대로 무시해 버리면 된다. 나의 기준에 의한 아름다움으로 키운 자존감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며 상처받지 않게 도울 것이다. 또 이렇게 형성된 자존감은 나를 다른 세상으로 안내한다. 여유가 있고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앞서 등장한 목표체중에 도달할 때 보다 더 큰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무엇보다 세상에 기준으로 나를 맞추지 말고 나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진다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은 물론 가족, 친구, 연인과의 갈등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나만의 색과 향을 풍기는 나에게는 그 색과 어울리는 그 향이 취한 사람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기준에 나를 맞추고 기준에 도달해서 오는 만족감,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자괴감…. 그것은 틀리다. 당신이 정한 세상에 아름다움만이 정답이다.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당신은 있는 그대로도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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