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방문판매원 특수근로자 편입 추진…일자리 축소 우려 목소리  


정부가 수백만명 규모로 추정되는 방문판매원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편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에 방문판매 시장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정부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동3권 보장, 산재·고용보험 적용을 공식화하면서 노동시장에 새로운 변화가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의 편입이 추진되고 있는 탓이다. 

한편 이번 방문판매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편입 추진으로 덩달아 다단계판매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방문판매와 유사한 판매방식 때문에 방문판매원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편입이 되면 다단계판매원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특수고용직도 실업급여 받는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수고용직)는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보험설계사와 택배기사, 퀵서비스 배달기사, 대리운전 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독자 사업장 없이 사업주와 계약을 하고 직접 소비자를 창출해서 일한 만큼 소득을 얻어간다. 하지만 근로자나 자영업자에 해당하지 않아 보호 사각지대에 있었다. 

일례로 보험설계사의 경우 A라는 보험회사와 계약을 맺고 보험상품을 판매한다. 정해진 출근 시간과 업무보고, 영업 관리 등 근로자와 비슷한 패턴으로 일을 하지만 4대 보험은 누릴 수 없었다. 이것은 보험설계사 뿐만이 아니다. 택배기사나 학습지교사, 골프장경기보조원(캐디), 퀵서비스 기사 등도 특수고용직이라는 미명하에 사업자등록을 한 ‘사장님’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특수고용직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수고용직의 보호방안에 대한 논의는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근로자로 구분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었다. 2003년 노사정위원회는 공익위원안으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의 보호를 위해 산재보험의 적용 및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특별법 제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노사정위원회의 안은 결국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도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 특수고용직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법적, 제도적 보호를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이에 정부에서 국정과제 중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의 후속조치로 특수고용직에게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과 고용·산재보험 등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마디로 특수고용직에게 노동자의 지위를 부여하겠다는 의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근로 실태 파악 및 법적 보호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택배기사·퀵서비스기사·화물기사·레미콘기사·덤프트럭기사·대리운전기사·보험설계사 등 7개 직종의 특수고용직은 91만3435명으로 추산된다. 직종별로 차이를 보이지만 특수고용직들은 계약을 맺은 업체에 종속돼 있는 경우가 많았고 경제적인 부분도 노동자성이 인정될 정도로 높은 종속성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직종별 노동자성을 판단하기 위해 실시한 설문 조사를 살펴보면 1개 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가 10명 중 7명(66.3%)으로 나타났다. 임금을 협의해 결정하는 경우는 14.8%에 그쳤고 사측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경우가 75.6%에 달했다. 또 사측이 제시하는 업무를 자유롭게 거절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응답자의 66.7%는 ‘거절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특수고용직들은 자발적 보호 수단이 미약한 상태에서 계약관계에서 다양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면서 “위장자영업자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최근 고용보험위원회를 개최하고 특수고용직과 예술인의 고용보험 적용 방안을 심의·의결했다. 고용보험은 실업급여와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사업 등을 실시하는 사회보험 중 하나다. 그간 임금노동자에게만 적용되고 특수고용직과 예술인은 제외돼 왔었다. 

이번 방안으로 보험설계사나 퀵서비스 배달기사 등 특수고용직 뿐만 아니라 예술인도 고용보험이 적용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고용보험 사업 중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사업은 제도 운영결과 등을 보고 추후 적용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보험료는 특수고용직·예술인과 사업주가 공동 부담하며 임금노동자와 유사한 수준(보수의 0.65%)으로 할 방침이다. 다만 노무제공의 특성상 특수형태근로자·예술인이 동일하게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 사업주의 부담 비율을 달리 할 계획이다.

실업급여는 이직 전 24개월 동안 12개월(예술인은 9개월) 이상 보험료를 납부한 비자발적 이직자 및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감소로 이직한 사람에게 지급된다. 지급수준은 이직 전 12개월 동안 보험료 납부 기준인 월평균 보수의 50%로 하되 상한액은 임금노동자와 동일하게 적용(하루 6만원)할 예정이다. 지급기간 역시 임금노동자와 동일하게 적용(90~240일)된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은 “급변하는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을 위해 영국은 이미 국민보험제도를 통해 모든 취업자에 대한 실업급여·부조를 운영 중이고 프랑스도 올해부터는 자영업자까지 실업보험을 적용하는 등 보편적인 실업보험제도로 나가고 있다”면서 “취업자 중 비임금근로자의 비중이 OECD국가의 2배 수준인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고려해 특수고직·예술인의 고용보험 적용을 통한 일자리 안전망 구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결정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특수고용직 특성상 업무 범위가 막연하고 충분한 준비 없이 시행할 경우 ‘비정규직 사태’처럼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란 지적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 관계자는 “20년 가까이 노동기본권 보장을 주장한 특수고용직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더 나아가 회사의 부당한 행위에 대응할 수 있는 노동 3권 보장도 하루 빨리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방문판매원도 특수고용직 편입 추진
이처럼 특수고용직을 노동자로 인정한 분위기 속에 방문판매원을 특수고용직으로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상 특수고용직에 방문판매원을 편입시키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는 11월 말까지 방문판매원 규모와 근로현황 등을 파악해 특수고용직에 포함시킬지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현행법에 규정된 특수고용직은 현재 보험설계사·콘크리트믹서트럭 운전사·학습지 교사·골프장 캐디·택배원·퀵서비스 기사·대출모집인·신용카드회원 모집인·대리운전 기사 등 9개 직종 종사자 뿐이다.
방문판매원이 특수고용직에 편입되면 수십만명의 판매원들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한국직접판매산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후원방문판매를 포함한 방문판매 업체는 지난 2016년 기준 2만3475곳으로 판매원 수는 약 99만7900명에 달한다. 

이러한 정부 방침에 대해 방문판매 업체들은 대체로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방문판매원 수가 곧 매출’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산재보험 적용을 통해 방문판매원의 노동권리 보장과 방문판매 조직 확대에 힘쓸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의 ‘노동 3권’에 대해선 다소 부담스러운 분위기다. 만약 노조가 설립된다면 부가적인 비용 부담이 뒤따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택배업계의 경우 노조 설립이후 택배비 인상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방문판매의 경우도 고용보험료와 수당 등 각종 비용이 증가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문판매원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현재 근무환경에 만족한다는 목소리가 있는가하면 안전장치가 생겨서 좋다는 반응이다. 

광주에서 화장품 방문판매원으로 일하는 H씨는 “방문판매는 출퇴근과 근무시간이 자유롭고 일하는 만큼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이 때문에 가정주부들이 집안일과 병행하면서 활동할 수 있는데 법이 바뀌면 이러한 활동이 힘들어질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반해 부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C씨는 “일반 회사원들과 비슷하게 근무하지만 그에 비해 혜택은 거의 없는 편”이라며 “퇴직금이나 실업급여 등의 안전장치가 생긴다면 그만큼 안정감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불안정하고 불합리한 활동에 대해서는 보호가 필요하고 영업활동 과정에서 안전과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서 정책적인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하지만 높은 근로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판매원들이 적지 않고 실적이 저조한 판매원의 경우에는 잘릴 수 있다는 고용 불안감과 초조함에 처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방문판매원의 특수고용직 편입이 논의되자 덩달아 다단계판매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다단계판매는 방문판매와 판매방식이 유사하기 때문에 방문판매원이 특수고용직으로 편입이 되면 다단계판매원도 특수고용직 편입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관측에서다.

이와 관련해 업계 전문가는 다단계판매의 경우 제품 및 서비스 할인 등의 혜택을 위해 가입한 후 자가소비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반면 방문판매는 말 그대로 판매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특수고용직 편입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한마디로 다단계판매는 ‘소비자’의 성격이 강하지만 방문판매는 ‘세일즈맨’의 성격이 짙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방문판매와 다단계판매는 판매방식이 유사해보이지만 태생부터 전혀 다른 산업”이라며 “따라서 다단계판매원은 특수고용직으로 편입될 가능이 다소 낮게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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