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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드는 순간, 멋짐이 폭발한다사피오섹슈얼, 비이성적 태도에 대한 반성적 경향으로 주목
  • 이정석 기자
  • 승인 2018.03.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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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틀면 지식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TV 밖에서도 지성은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트렌드 중 하나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유 시간을 소비하고 자기계발에 활용하는 도구를 넘어 책을 읽는 모습을 찍어 SNS에 올리고, 책 읽는 이성에게 성적 매력까지 느끼는 시대다. 유행에 민감한 패션계는 물론 숙박, 유통업계까지 이러한 트렌드에 조금씩 반응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인기와 함께 첫 회에 등장한 단어 하나가 화제를 모았다. 정재승 박사가 유시민 작가의 연애담을 들으며 언급한 ‘사피오섹슈얼’이라는 단어다. 
사피오섹슈얼(sapiosexual)이란 ‘이해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사피오(sapio)와 성적 매력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sexual이 합쳐진 말로, 똑똑하거나 지혜로운 사람 혹은 성숙한 사람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나 현상을 일컫는다. 육체적인 매력 뿐만 아니라 지적인 매력이 이성의 호감을 얻고, 그 사람에 대한 인간적 평가를 높여주는 용어다.

‘뇌섹남’, ‘뇌섹녀’라는 신조어의 등장과 함께 주목 받았던 지성에 대한 관심이 최근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트렌드가 가장 빨리 반영되는 분야로 꼽히는 종편과 케이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TVN ‘알쓸신잡’과 ‘어쩌다 어른’을 필두로, JTBC ‘썰전’, ‘차이나는 클라스’ 등 시사, 지식 콘텐츠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거나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지상파인 KBS의 ‘명견만리’와 팟캐스트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까지 그야말로 지식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전문가들은 지성을 지향하는 트렌드 급부상 배경으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진 사회상에 주목한다. LG하우시스는 지난해 말 진행한 2018/2019년 디자인 트렌드 세미나에서 올해 디자인 트렌드 키워드로 ‘우아한 도발’을 제안하며, 그 배경으로 SNS를 통한 가짜 뉴스 확산 등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각종 정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진 사회 분위기를 지적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에 매몰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부작용으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이나 ‘혐오문화’가 확산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끊임없이 진실을 탐구하고 폭넓은 지식을 쌓는 성숙한 지성을 지향하는 문화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더불어 현재의 지식보다 새로운 지식을 학습해 융합하는 능력이 중시되는 4차 산업혁명, 평균 수명 연장으로 인한 고령화 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평생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상황 또한 지성에 대한 욕망이 확산되는 이유 중 하나다. 

지성을 대표하는 책과 독서 문화의 생활 속 비중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 교육·출판 기업 미래엔에서 지난해 발표한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책은 여유를 대표하는 소비 콘텐츠로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일상 관련 소비 콘텐츠 중 영화·영상, 체험·활동, 교육에 밀려 4위에 머물렀던 책은 ‘여유’ 키워드와 관련해서는 24%로 전체 1위로 급부상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여유’와 ‘찍다’를 동시에 포함하는 영역에서 25.7%로 그 비중이 더욱 확대됐다는 점이다. SNS의 활성화로 인해 사진을 통해 자신의 자랑하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을 확산하는 경향 속에서 책이 곧 자신의 여유를 과시하는 대표적인 도구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인증샷’과 ‘찍다’와 연관된 콘텐츠 중에서도 책은 여행에 이어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로 꼽혔다. 책과 독서 활동이 바쁜 일상 속 여유 시간을 활용하는 것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가치로서도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호텔에서 쇼핑몰까지, 책 읽는 곳 달라
미국 패션 브랜드 바나나리퍼블릭은 이러한 현상을 실제 마케팅에도 활용했다. 2015년 독서를 하는 멋진 남자들의 모습을 찍어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Hot Dudes Reading’이 등장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에 바나나리퍼블릭은 Hot Dudes Reading과 제휴를 맺고 자사 의상을 착용한 모델들을 지하철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홍보하며 화제를 모았다. 사피오섹슈얼의 호감 이미지를 자사 브랜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사피오섹슈얼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수준을 넘어 독서에 대한 니즈가 강해진 소비자들을 직접 공략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트렌드를 앞서는 선구자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분야는 ‘숙박’ 업종이다. 일본의 ‘북앤베드’는 숙박과 독서를 결합한 예로 전 세계에서 주목 받고 있다. 박스처럼 만들어진 개인 공간과 침대에서 저렴한 가격에 책을 읽으며 잠드는 여유롭고 소박한 사치를 즐길 수 있는 이곳은 지난 2015년 도쿄에 처음 오픈한 이후 교토와 후쿠오카까지 지점을 늘리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체적인 구조와 만 권에 가까운 도서가 수면, 숙박보다 독서에 초점을 둔 듯하지만 무료 Wifi, 샤워실, 드라이기까지 숙박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곳이 있다. 합정동의 ‘세렌디피티’는 주인이 자신의 기준으로 개성 있게 분류해 진열한 책을 읽으며 맥주나 차 등의 음료와 간식을 즐길 수 있다. 북앤베드처럼 숙박은 안 되지만 침대에 누워 내 방처럼 편하게 책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유통업계에서도 책을 매개로 고객과 소통하고 있다. 쇼핑을 테마로 한 복합 문화공간을 표방하는 복합쇼핑몰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대형서점이 필수적으로 입점하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 서점 입점을 넘어 고객들에게 특별한 독서문화공간을 제공하는 곳도 생겼다. 신세계프라퍼티가 운영하는 스타필드 코엑스몰의 대표 문화 공간, ‘별마당 도서관’이다. 지난해 5월 오픈한 이곳은 6개월 만에 1000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가며 코엑스 상권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코엑스몰의 중심인 센트럴플라자에 2개층, 총 면적 2800㎡로 자리하고 있으며 13m 높이의 대형 서가와 6만권 이상의 도서, 600여종의 최신잡지 코너와 최신 e-book 시스템까지 갖췄다. 6개월간 도서구입비만 1억원 이상을 투자했으며 독서 공간은 물론 강연과 광연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까지 함께 제공해 최근 서울 시내에서도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정석 기자  nexteconomy@nex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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