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유통기업 대표들 ‘갑질 셀프 개선’ 약속…납품업체 이름 살린 PB도 출시돼 눈길

PB의 노예계약이 끝났다.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장과 유통업계와의 간담회’에서 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유통 업체가 납품 업체 브랜드를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전환해 납품 단가를 낮추는 불공정거래 행위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이날 6개의 유통분야 사업자 단체 대표들이 ‘거래 관행 개선 방안’과 ‘납품업체·골목상권과 상생협력을 위한 실천방안’을 자발적으로 내놔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얼룩진 PB의 눈물을 닦겠다는 대형유통업계의 이번 행보가 순간의 감언이설로 끝날지, 아니면 진심으로 통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우리 기업이 달라졌어요?!
정부가 회초리를 들기 전에 유통업계 반장들이 서로 반성문을 제출했다. 지난해 11월 ‘유통산업의 거래 관행 개선 및 상생 협력을 통한 경쟁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6개의 유통업태(백화점·TV홈쇼핑·온라인쇼핑몰·편의점·면세점) 대표들이 마주한 자리에서 말이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6개 유통 업태를 대표해 나온 기업 대표들은 먼저 ‘자율 실천 방안’을 내밀었다. 납품 업체들과 거래 관행 개선하고 골목 상권과의 상생 협력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 자율 ‘갑질 개선 선언’이었다.

그간 유통업계는 새 정부는 출범이래 유통산업의 고질적인 관행으로 꼽혔던 불공정 거래를 없애라는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특히 지난해 8월 공정위는 ‘유통 분야 불공정거래 근절대책’에서 ‘대형유통업체의 불공정 행위 억제해야 하며 납품업체 피해 구제와 권익 보호가 필요하다’고 꼬집은 바 있다. 또한 대규모 유통업체가 납품업체 파견직 인건비를 분담하는 등 7가지 강력사항을 법으로 개정할 것을 예고했다. 이에 개정 전 유통기업들이 스스로 환골탈태에 나선 것. 

자율방안은 ‘최저임금 인상과 원재료 가격 변동 등으로 공급 원가가 바뀌면 납품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반드시 계약서에 명시’하는 등 주로 납품업체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던 무리한 요구를 근절, 납품업체의 재고 부담을 완화시키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날 김상조 위원은 “자발적으로 시행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대단한 성과”라며 “자율상생안에 상당히 긍정적인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고 칭찬했다. 이어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의 상생은 우리 유통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상조 위원은 PB전문점인 노브랜드를 육성하고 있는 이마트의 ‘중소기업 제품을 70%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높이 샀다. 이마트의 노브랜드가 중소기업 제품 비중을 7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김 위원장이 키워드로 두고 있는 ‘골목상권 살리기’와 관련해 ‘중소기업과 상생 체제를 구축’하는 모범사례에도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날 유통업계가 발표한 방안에는 납품업체의 기존 브랜드 제품을 PB상품으로 전환해 납품단가를 낮추고 고유브랜드 성장기회를 제한하는 행위를 중단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반면 유통업계가 내놓은 ‘골목 상권과의 상생 협력 방안’에 대해 당사자인 중소상인은 심드렁한 반응이다. 예정보다 ‘유통업계 자율 상생안’을 한 달이나 늦게 들고 나왔음에도 내실 있는 실천방안은 없고 그동안 발표된 업체별 상생안 종합본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중소기업 제품 비중을 70% 이상 유지하겠다는 이마트의 약조는 이미 지난해 5월 중소기업진흥공단과의 업무협약을 맺으며 발표됐던 사항이며 중소납품업자를 대상으로 해외시장 개척단을 운영하겠다는 롯데백화점의 방침 역시 지난해부터 실행해온 ‘해외 구매상담회’의 연장선이었다. 더불어 사실상 대형유통업체들의 ‘자율적 갑질 개선’ 의지로 내보인 ‘입점 심사·평가 시 납품업체에 과다한 경영정보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현행 대규모유통법에 포함된 내용이다.

환골탈태를 선언한 유통업계에 대한 진실공방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최근 자율상생안에 대한 실물이 포착되고 있어 긍정적인 결과도 예상된다. 최근 GS리테일은 GS수퍼마켓을 통해 납품업체의 고유의 브랜드네임을 살린 PB브랜드 ‘리얼 프라이스’를 론칭해 이를 실천했다. ‘꽃샘에서 만든 현미녹차’ 등 상품에 제조업체 이름을 넣어 중소기업의 브랜드 홍보 효과를 얻고 또 그에 따른 책임감 있는 생산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개선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며 “약속을 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구체성 높여가며 유통거래 관행이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납품업체의 상생을 고려하지 않은 형태의 관계는 단기적 유통업체의 이득을 가져올수 있지만 결국은 납품업체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져 유통업체의 동반 몰락으로 부메랑 될 것”이라며 일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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