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쇠파리> 안철호 감독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이 부활했다. 물론 영화 속의 얘기다. 조희팔 사건은 지난 2004년부터 2008년 4년에 거쳐 전국에 10여개의 의료기기 대여업을 빙자해 경찰 추산으로 투자자 5만명에게 피해액 4조원을 가로챈 국내 최대 규모의 유사수신 사기 사건이다.

다단계판매 업계에서도 조희팔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 당시 관련된 언론보도 등이 모두 ‘불법 금융 다단계’라는 용어로 사용돼 합법적 다단계판매 업계에 불법이라는 오명의 데미지가 지금까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5월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한 영화 <쇠파리>가 개봉했다. 잔잔하던 업계에 다시 국내 최대 규모 유사수신 사기사건의 전말이 떠올랐다.

끝나지 않은 설움

영화 <쇠파리>는 대국민 사기 방지 공익 영화라는 슬로건 내걸고 제작됐다. 실제 일반 영화 제작사가 아닌 신재철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대국경북지회 회장의 제의와 대구시의 지원이 일조했다. 또한 조희팔 사건 피해자들의 모임인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이하 바실련) 소속 실제 피해자들의 엑스트라 출연이 영화에 힘을 실었다.

그런데 왜 하필 조희팔 사건일까? 안철호 감독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국내 최대의 사기사건이지만 허무할 만큼 찜찜한 사건의 종결과 아직까지 피해액 환급을 받지 못해 그 당시의 끔찍한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 무엇보다 그 당시의 피해자가 아닐지라도 유사수신 사기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으며 누구든 언제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다는 의지를 담았다.

안철호 감독은 “지금까지 조희팔 사건의 희생양으로 고통 받는 피해자들을 위해 영화 제작을 결심하게 됐다”며 “유사수신 범죄는 지속해서 변화하고 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범죄로 이 영화를 통해 경각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 <쇠파리>는 평범함 삶을 살고 있는 가정이 유사수신 사기사건에 휘말려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담아냈다. 지난해 12월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한 또 다른 영화 <마스터>가 범죄자와 경찰에 포커스가 치중 됐다면 이 영화는 오롯이 피해자의 입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안철호 감독은 “쇠파리는 피해자 입장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영화”라며 “피해자들이 왜 사기사건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는지, 피해자가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배경 등 실제 피해자들의 사례를 있는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영화 <쇠파리>는 수많은 시나리오 수정작업을 거쳤다. 흥미나 재미 위주의 첫 시나리오는 자료수집 과정과 실제 피해자와의 인터뷰 등에 있어 여러 번의 수정이 이뤄졌다.

안철호 감독은 “현재 진행형인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려다 보니 굉장히 조심스러웠다”며 “쇠파리는 재미와 흥미 그리고 실제 피해자들의 의견 등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사건의 팩트를 바탕으로 제작됐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된 안감독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실제 피해자는 7만여명으로 추산된다. 피해액 또한 5조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제1금융권의 대출, 수차례 고소와 무혐의 판정 등은 정부기관의 용인 의혹을 증폭하고 있는 원인이며 조희팔이 4년이란 시간동안 범죄를 지속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포스터에 적힌 ‘금융 다단계 사기 실화’라는 용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철호 감독은 먼저 한국직접판매산업협회와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직접판매공제조합 등 다단계판매 업계 주요 3개 단체가 조직한 ‘다단계판매 용어 오남용 상설 협의회(이하 협의회)’의 공문을 전달 받았다고 했다. 협의회는 언론기사 및 문화 콘텐츠의 ‘다단계판매’에 대한 맹목적 폄하나 무분별한 다단계용어 사용을 줄이고 업계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자 조직됐다. 하지만 안철호 감독은 사건을 담당한 검찰 관련 자료 뿐만 아니라 자료수집 요청에 동의한 각 언론매체에서도 다단계 금융 사기라는 용어가 사용됐으며 유사수신보다는 다단계라는 용어가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가 공감을 얻을 것이란 생각에서 다단계라는 용어를 선택했다.

안철호 감독은 “협조 공문과 관련해 용어 변경요청은 받았다”며 “하지만 현재 검찰 및 언론사 등에서 불법 다단계라는 용어는 평이하게 사용되는 단어로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성은 제작사의 판단으로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합법적 다단계판매에 피해가 우려된다면 변경요청 등의 공문 외에 대체할만한 다른 용어가 생겨야 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안철호 감독은 영화 <쇠파리>를 통해 잠자고 있던 조희팔을 부활시켰다. 실제 피해자의 아픔을 대변하기에는 단면적이지만 더 이상 이러한 끔직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주변에서 누구나 격을 수 있는 이 사건을 통해 유사수신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도 담았다. 실질적으로는 피해액 환급을 촉구하는 바실련법 국회 통과와 규모 대비 가벼운 형량, 무엇보다 애초에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법적제도가 강화되길 바랬다.

다단계판매 업계에서는 사실 조희팔 사건의 가시화가 달갑지 않다. 업계 이미지 개선에 대한 그동안의 노력이 단 한편의 영화로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희팔 사건은 결코 숨겨서는 안 될 사건이다. 지금도 고독하고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피해자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무엇보다 업계가 합법하고 정당하다면 그 판도라의 상자를 정면으로 마주 할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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