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지난 6개월간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 6·70년대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상징이던 부친의 후광을 업고 당선됐던 박근혜 대통령, 반세기에 걸쳐 굳어진 콘크리트 지지층은 바람 불면 꺼질 것이라는 시민들의 촛불에 의해 허물어지고 형사피고로 재판정에 서게 됐다. 하지만 촛불의 힘이 우리 정치의 지평을 바꾼 것은 권력으로 좌지우지하기 어려운 소비자들의 선택이 광고주들과 언론을 움직인 데도 있었다. 이미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커다란 힘은 시장과 소비자들이다.
필자는 소비자의 힘으로 우리 경제 문제도 해결하자는 생각으로 이번 대선에서 좀 늦기는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소비자프랜들리 위원회를 맡아 당의 정책 담당자들을 설득하고 중앙 선대위와 소비자단체협의회 간의 정책협약도 추진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소비자프랜들리 하게 바꿔 보고자 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정책협약을 통해 ▲기업중심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소비자중심으로 전환하고 ▲권리행사가 용이하게 되도록 소비자피해배상 법제를 개선하고 ▲소비자보호를 위해 기금 설치 및 관련 행정조직을 강화하며 ▲소비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지만 실제 정책으로 어느 정도 반영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쉽게도 정치지도자는 물론 경제전문가들조차도 우리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답이 소비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적폐의 청산에 대한 다툼은 있지만 진보든 보수든 당면한 경제의 어려움을 정부 주도의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중소기업 전담 부처를 만들어 유망기업을 육성하고 정부가 일자리를 직접 만들거나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지원하고 공공부문에서 임대주택을 짓고 어린이집을 만들어 저소득층을 지원해야 한다고 거의 한 목소리로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정책은 성공해도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현재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정부에 중소기업 지원부서가 없어서 일까? 생산성 없는 공공부문 일자리로 청년 일자리 문제가 장기적으로 해결되고 경제도 좋아질까? 정부가 짓는 임대주택이나 어린이집은 민간이 공급하는 임대주택이나 어린이집보다 비용이 덜 들까? 정부 주도의 문제 해결은 현재의 경제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보다 더 큰 부담을 국민들에게 안겨줄 것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면 수치상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정부가 중소기업 전담부서를 만들어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공공부분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더 많은 인력을 채용하도록 하고 일부 저소득층을 위해 전시성 혜택을 주는 일을 성과로 내세우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자칫 정책의 성공은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중소기업들이, 청년들이, 저소득층이 줄서는 사회를 만들어 버릴 우려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중소기업을 지원하기보다 중소기업의 상품을 사는 소비자들을 지원하고 소비자들이 좋은 중소기업을 찾아내기 쉽게 해(어쩌면 악덕 기업을 가려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많은 기업들이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브랜드를 가질 수 있게 하고 정부가 직접 저소득층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최저 생활(주거, 교육, 의료 등)을 보장하는 바우처를 지급해 저소득층의 구매력을 지원하며 소비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민간이 공급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직접 답을 주려 하지 말고 소비자들로 하여금 문제를 풀도록 하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효율적이다. 소비자들의 중소기업 상품 구매액은 연간 약 300조원쯤이다. 만일 소비자들이 중소기업 상품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신뢰를 갖게 된다면 중소기업은 상품 값을 10% 쯤 더 받고 수요도 10%쯤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보면 최소한 30조원 이상의 이익이다. 만일 중소기업 가운데 10%쯤이 소비자들이 애용하는 브랜드 기업이 돼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로 된다면 10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과 맞먹는다. 그리고 하위 10%의 저소득층에 1인당 연간 200만원 쯤 지원해 교육이나 주거 등에서 10조원의 구매력이 늘어난다면 이로 인해 3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 지고 국민 생활도 나아지게 된다.
최고의 인공지능도 하나의 수퍼컴퓨터가 아니라 다수의 분산된 컴퓨터의 협업의 산물이라고 한다. 소비자라는 집단의 지혜를 활용하는 데 답이 있다. 그리고 아담스미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모든 생산 활동의 궁극 목적은 소비생활을 향상시키는데 있음은 자명한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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