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개인정보 매매, 대법서 판결 뒤집혀…업계 관행에 경종

“판사님은 이 글씨가 정말 보이십니까?” 이는 시민단체들이 재판부에 보낸 항의서한이다. 경품행사로 대량 수집한 고객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팔아넘긴 행위로 재판에 넘겨진 홈플러스가 1심과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이에 불복한 시민단체들이 이러한 항의서한을 보낸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개인정보처리 서면 동의서 작성시 주요 내용을 알아보기 쉽게 표시하는 것을 의무화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하면서 그동안 관행처럼 이어져온 개인정보의 편법 수집과 불법 판매가 자취를 감출 것으로 기대된다.

대법, 1㎜ 글자 ‘깨알고지’는 불법
홈플러스는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11차례에 걸쳐 경품행사를 진행, 이를 통해 얻은 개인정보 2400만여건을 보험사에 판매해 231억여원을 챙긴 혐의로 2015년 2월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경품응모권 앞면에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씨로 ‘정보수집에 동의하지 않으면 경품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고 기재한 반면, ‘수집한 개인정보를 보험회사의 안내를 위한 전화, 마케팅 자료로 활용된다’는 고지사항은 1㎜ 크기의 글씨로 기재해 알아보기 어렵게 하는 편법을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1, 2심은 “1㎜의 매우 작은 글씨 크기로 작성됐으나 사람이 못 읽을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정한 고지의무를 지켰다고 판단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또한 홈플러스가 보험사에 개인정보를 제공한 행위에 대해서도 “홈플러스의 개인정보를 판매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제공한 것이므로 이는 위탁에 불과해 소비자의 동의를 별도로 받지 않더라도 문제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지난 4월7일 대법원(대법원 3부, 주심 권순일 대법관, 2016도13263)은 홈플러스가 보험사에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판매한 사건에 대해 종전 1심과 2심의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최종 유죄를 판결했다.

대법원은 소비자가 경품행사에 응모할 때 아무런 대가 없이 이뤄지는 행사인지 아니면 개인정보를 보험사 등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사인지가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경품응모권에 1㎜ 크기의 글씨로 기재된 것은 읽기가 쉽지 않고 짧은 시간 동안 응모권을 작성하면서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홈플러스의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제72조 제2호에서 규정한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하거나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동의를 받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또한 보험회사는 단순한 수탁자가 아니라 자신들의 독자적 이익과 업무처리를 위해 홈플러스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제3자에 해당되므로 소비자로부터 개인정보처리에 관한 동의를 받지 않은 이상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참여연대는 “대법원의 판결은 개인정보 매매의 심각성을 알리고 기업의 개인정보처리의 윤리를 바로 세웠다”면서 “이번 판결로 기존 기업의 개인정보매매의 관행을 뿌리 뽑고 대한민국의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기준을 세우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정부, 깨알 고지 근절 나서
유통업체들이 경품을 미끼로 개인정보 장사를 한 것은 홈플러스만이 아니다. 깨알글씨 때문에 소비자들은 잘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관행처럼 이뤄져왔다.

실제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홍일표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상위 5대 보험사가 영업을 위해 최근 3년간 구매한 개인정보가 278만건이며 수수료 명목으로 지불한 비용도 84억원을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자 정부에서도 대응에 나섰다. 개인정보 동의서 주요 내용을 알아보기 쉽게 표시하도록 의무화한 것. 이로 인해 작은 글씨로 적어놔 개인정보 동의서의 중요 내용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동의하는 사례가 사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행정자치부(장관 홍윤식, 이하 행자부)는 최근 개인정보 처리를 관해 서면 동의서를 작성하는 경우 중요 내용의 가독성을 높이도록 의무화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행자부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은 홈플러스 사건으로 인한 논란을 입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조치”라며 “동의 사항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알리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현행 규정을 강화해 동의 사항 중 중요한 내용을 명확히 표시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자부는 개정안 공포 후 6개월 경과 뒤 시행일에 맞춰 대통령령과 행자부령을 마련할 계획이다. 우선 대통령령에선 ▲개인정보 수집·이용 목적 ▲수집하려는 개인정보의 항목 ▲개인정보 이용·보유 기간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려는 경우 제공받는 자 등을 ‘눈에 잘 띄도록 표시’해야 할 중요 사항으로 규정했다. 아울러 행자부령에는 ▲밑줄·괄호 등의 기호 ▲색깔 ▲굵고 큰 문자 등을 적용해 ‘눈에 잘 띄도록 표시’하는 방법을 정하도록 했다. 또한 동의서 작성 예시와 잘못 작성된 사례를 만들어 배포, 업계에서 법규 수범에 대한 어려움이 없도록 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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