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유통산업 강력 규제 남발…유통업계·소비자, 현실적 정책 필요해

대형마트·백화점은 물론 아울렛·복합쇼핑몰에서 일요일에는 쇼핑할 수 없다. 시내면세점도 마찬가지다. 밤 12시 이후에는 편의점도 문을 닫는다. 높은 할인율을 보이던 출장세일도 없어진다. 또한 대형마트 등 대규모 유통시설 개점은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인근 지자체의 허가를 받지 못하면 꿈도 꿀 수 없게 된다.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산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생기게 될 변화다. 대한민국 ‘쇼핑 블랙아웃’이 현실화 되는 것이다.

이에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이익을 저해하는 결과가 일어날 수 있는 유통산업법 제정은 반드시 소비자 의견이 반영돼야 하며 골목상권 보호는 기존 유통업체의 규제가 아닌 자영업자들의 자생적인 경쟁력을 강화하는 지원책을 마련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20대 국회에서는 모든 정당이 유통 규제 강화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2012년 정부는 대형마트만 규제하면 전통시장이 살아날 것이라는 주장으로 대형마트 출점 및 영업시간 제한 등의 유통업 규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5년간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자 더 센 처방전을 들고 나왔다.

지난 4월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유통규제법안은 총 23건이다. 주요 법안 내용으로는 ▲백화점, 대형마트, SSM 일요일 의무 휴업(대형마트, SSM 요일지정 가능)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월 2일에서 4일로 확대 ▲면세점·복합쇼핑몰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 ▲이마트 에브리데이 등 준대규모점포 입점 규제 ▲대형마트 점포 등록 지자체의 허가제 도입 ▲등록 소재지 이외의 장소 출장세일·판촉행사시 영업정지 및 과태료 부과 ▲대규모 점포 개설 제한을 위한 중소유통상업보호지역 별도 지정 등이다.

이번 개정 법안들도 물론 대규모 유통기업의 무분별한 진출과 영업으로 인해 소상인들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는 판단으로 기존의 골목상권보호 제도를 보완하고자 제안됐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정부는 유통규제에도 불구하고 전통시장의 부흥 및 골목상권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막대한 소비위축만 불러 일으켰다. 소비자의 선택 또한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전통시장이 아닌 편의점과 온라인쇼핑몰로 향했다. 실제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통시장별 일평균 매출액은 지난 2012년 4755만원에서 2013년 4648만원으로 감소했고 2015년 4812만원으로 소폭 증가하는데 그쳤다. 또한 대형마트 3사의 매출은 유통산업법 이후 연간 2조원 넘게 줄어들었다. 더불어 대형마트 등의 규제를 통해 소비자의 발길을 전통시장으로 돌리겠다는 당초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소비자들은 전통시장 대신 편의점이나 온라인쇼핑몰을 찾았다. 2012년 34조680억원 규모이던 국내 온라인쇼핑 시장은 2013년 이후 연평균 17% 성장하고 있으며 편의점 또한 2015년 24.6%, 지난해 18.6%로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했다.

한 유통업계의 관계자는 “대형마트를 규제했지만 전통시장 매출은 늘지 않고 오히려 편의점과 온라인 시장만 커지는 풍선효과가 발생한 꼴”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의 머피의 법칙을 이미 경험한 유통업체들은 유통산업법이 다시 한번 개정되면 매출 급감은 물론 소비심리 위축에 이어 소비절벽까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면세점의 경우 면세 사업의 특성이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개정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해 기준 면세점의 내국인 비중은 10~20%정도다. 그마저도 해외여행을 가는 고객들이 대다수여서 골목상권 보호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면세점도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 대상 업체가 됐다. 현재 연중무휴로 운영되고 있는 면세점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시내 면세점은 오후 8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운영되며 매달 일요일 중 하루는 영업할 수 없다. 공항 및 항만 면세점은 오후 9시 30분부터 익일 7시까지로 영업시간이 변경된다. 또한 설날 및 추석 당일은 의무휴업일로 지정된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면세점의 특성상 내국인 고객보다 외국인 비중이 훨씬 높다”며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면세점을 휴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업계의 경우 계속되는 규제로 인해 신규 출점 계획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3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2017 유통산업백서’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매출 신장률은 지난해 0.9%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1.1%에 그칠 것이라 전망했다. 실제로 올해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신규 출점계획을 잡지 않았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나 SSM을 규제하면 전통시장이 살아날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실상은 둘 다 어려움에 빠뜨리고 있다”며 “포퓰리즘적인 법안이 아닌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좀 더 현실적인 정책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고 유통업계 전체를 규제하는 것은 근시안적 규제라고 강력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유통산업은 판매자와 구매자 양 주체 간의 거래인데 유통산업발전법은 판매자의 이해관계 조정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한 축인 구매자의 이익은 철저하게 무시해 왔다”며 “규제를 통해 소비자의 쇼핑행태를 묶어두려는 시도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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