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사람이라면 1000년이 걸릴 100만번의 기보 학습을 단 4주 만에 마쳤다. 지식의 유효기간은 갈수록 짧아진다.”
“2020년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자동차 시대가 열릴 것이다.”
“향후 25~30년 이내 전 세계 일자리의 50% 이상이 사라질 것이다.”
조만간 현실화 될 미래 전조에 대한 국내 주요 신문들의 언급이다.
지난해 다보스 포럼에서는 이 같은 전조들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수렴했다. 바로 ‘4차 산업혁명’이다. 다보스 포럼의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지난 다보스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가 ‘하는 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 자체’를 바꿀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난 200년 동안의 1~3차 산업혁명으로 인류가 삶이 크게 변해왔지만, 4차 산업혁명은 인류 그 자체를 바꿀 정도로 거대한 파괴력을 가졌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은, 그리고 유통업계는 4차 산업혁명에 탑승할 준비가 돼 있는지 짚어봤다.

 

사전식 정의를 보면 1차 산업혁명은 1784년 영국에서 시작된 증기기관과 기계화를 의미한다. 증기기관이 불러온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대가 시작됐다. 인류는 가내 수공업에서 공장제 공업으로 생산과 노동의 방식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이어 1870년 이후부터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2차 산업혁명이 있었다. 전기와 더불어 석유의 개발, 이를 활용한 화학의 신(新)분야 개척이 이뤄졌다. 전기와 석유의 개발은 인류에게 교통과 통신의 발달을 선물했고, 전 지구적 이동이 가능한 국제화시대가 개막됐다.
3차 산업혁명은 1969년 인터넷이 이끈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시스템이 주도했다. 인터넷 기술과 재생가능에너지의 결합이 특징을 이룬다. 이때부터 인류는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제품생산이 가능한 시대를 맞이했다. 인터넷은 특히 인류에게 생산자와 공급자의 경계가 붕괴되는 시대를 경험하게 만들었다.
도래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현재 진행형이다. 물리학과 디지털, 생물학의 경계를 허문 거대한 융합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단순 기술 혁명의 시대가 아닌 초연결사회의 시작점에 인류가 서 있는 셈이다. 미래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전(全)세계 사회, 산업, 문화적 르네상스를 불러올 과학기술의 대전환기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을 통해 실재와 가상이 통합돼 사물을 자동적, 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간단하게는 기업들이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작업 경쟁력을 높이는 시대가 열리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인공지능, 로봇, 3D프린팅,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이 널리 활용되면서 전통적인 제조업에 의존하던 국가는 몰락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은 쇠퇴할 것이라는 전망과 맥을 같이 한다. 지금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이다. 최근 수년 동안 우리나라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실적이 주춤해지고, 주력산업인 조선업과 해운업 등이 쇠퇴하면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상도 4차 산업혁명의 진입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앞서가는 미·독·중 vs 뒤처지는 한국

산업 분야에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는 이 같은 위기는 앞으로 더 확산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견이다. 미국과 중국, 독일 등 주요 국가들에서 이미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 국가와 글로벌 경쟁 관계인 대한민국도 서둘러 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은 현재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가 미흡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위스의 UBS은행이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국가별 4차 산업혁명 준비 평가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준비 수준은 세계 25위’에 그쳤다. G20 국가인 한국이 이처럼 초라한 성적을 기록한 것은 전통적인 제조업에 높은 비중을 둔 산업구조와 대기업 위주의 수직적인 경영 환경 때문이다.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미국과 중국, 독일 등 주요 국가들은 4차 산업혁명을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4차 산업혁명에 잘 대비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지멘스, BMW, SAP 등 독일의 글로벌 기업들은 2013년 3월부터 인더스트리 4.0의 플랫폼을 설립해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인더스트리 4.0은 공장이 스스로 생산 공정을 통제하고 수리와 작업장 안전 등을 관리하는 ‘스마트 공장’을 구축하고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생산 공정, 서비스, 물류까지 통합 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 독일 기업들은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AI), 로봇 기술을 융합해 생산 공정을 고도화한 스마트팩토리를 운영해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GE, IBM, 인텔, 시스코 시스템즈, T&T 등 미국의 제조업체 빅5의 경우는 2014년 3월 인더스트리얼 인터넷 컨소시엄을 설립했다. 특히 미국 기업 중 아마존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아마존고’를 최근 선보여 4차 산업혁명 이후 기업의 한 전형을 선보였다. 아마존고는 계산대 없는 마트다. 손님은 아마존고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한 뒤 매장에 들어가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아 나가기만 하면 된다. 계산대에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선반에 설치된 카메라와 센서가 고객이 담아간 제품을 인식하고 아마존앱과 연결된 계좌에서 자동으로 계산을 진행한다. 컴퓨터 시각화 기술과 인식 센서, 딥러닝 기술을 융합해 만든 시스템이다. 현재 아마존고는 아마존 직원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 중이다. 올해 안에 상용화될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을 롤모델로 삼아 ‘중국제조 2025 행동계화’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의 기존 제조업은 대규모 생산 위주의 방식에서 대규모 맞춤형 생산 방식으로 바꿀 계획이다.

한국은 국가적 단위의 전략을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사회 인프라 해결도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대표적인 것이 생산가능인구의 문제다.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지난해 말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4차 산업혁명은 생산가능인구가 많은 국가에서 잘 수용될 텐데, 한국은 노령인구가 많고 출산율도 낮아지고 있으니 그에 따른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국은 2027년에 고령 인구 비율이 20%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 3704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줄어들기 시작해 2060년에는 생산가능인구가 50% 이하로 줄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 및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노동 생산성이 낮아져 장기불황에 시달릴 수 있다는 진단으로 이어진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참고할 사례가 있다. 독일 정부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것에 대비해 일찍부터 여성에게 취업 기회를 늘렸다. 또 65세 이상 인구가 산업현장에서 계속 근무하도록 했다. 시리아난민 등 이민자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독일의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1980년대 후반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현재 60% 중반까지 낮아졌지만 독일 경제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다보스포럼은 앞으로 10년 후까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지 못하는 국가와 기업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지형도가 바뀌면 전통적인 제조업에 의존하는 국가는 몰락하고, 세계고용의 65%를 차지하는 주요 15개국에서 2020년까지 향후 5년간 5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다보스포럼의 관측에 기대보면 앞으로 미국은 물론 한국, 중국 등 국가의 제조 현장에서 인공지능을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일할 것이다. 공장노동자와 단순사무직 등 많은 일자리들이 임시직으로 바뀔 것이고, 인간의 일자리 중 고급에 속했던 의사, 약사, 판사, 변호사 같은 전문 직업군조차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샤란 버로우(벨기에 국제노동조합연맹)는 “2020년까지 과학기술로 인해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예측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부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일자리의 소멸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다보스포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현재는 구글, 아마존 등 거대기업들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3D프린팅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에 투자를 늘리고 있는데, 새로운 시대에는 소기업들에게도 기회가 생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생산비용과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생산하기 어려웠던 다품종 소량생산이 3D프린팅 등으로 가능해질 것이라는 예상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같은 맥락에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았다. 현재 가상현실(VR), 자율주행차, 로봇 등의 분야에 진출한 여러 스타트업들이 구글과 애플 등 대기업과 협력해 이익을 내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스튜어트 윌리스(영국 뉴이코노믹스 파운데이션 이사)는 “이제 우리는 다른 경제 모델이 필요하다”며 “지구상 모든 이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으로, 단순히 ‘성장’ 측면에서가 아니라 인류가 잘 사는 것을 극대화할 수 있는 측면의 모델”이라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 “4차 산업혁명 대응, 30년 좌우”
국내 1위 유통그룹 롯데를 이끌고 있는 신동빈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앞으로 3년 동안 4차 산업혁명에 제대로 대응하는지 여부가 30년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주요 유통업체들은 소비자 수요 변화와 온라인 유통의 급성장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 등이 유통산업 전반에 걸쳐 창조적 파괴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유통업체들에게는 위기이자 곧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는 의미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이 혁신적인 비즈니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서덕호 대한상공회의소 유통물류진흥원장은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기술의 유통산업 접목을 서두르고, 기업경영 및 유통 제단계의 디테일한 부분에서 창조적인 아이디어 적용을 확대해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신동빈 회장이 최근 그룹 정책본부 임원 회의를 통해서 인공지능·가상현실(VR)·사물인터넷(IoT) 등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과 소비계층 변화를 중점적으로 강조한 것도 이 같은 흐름에 따른 것이다. 신동빈 회장은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의 경계는 이미 허물어졌고, 저출산·고령화 추세의 인구구조 변화도 가속화되고 있다”며 소비트렌드의 변화도 함께 강조했다.

롯데는 신동빈 회장의 지침에 따라 최근 리테일(소매) 부문 계열사 CEO 및 제과·식품 부문 계열사 CEO들과 각각 간담회를 열고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롯데는 최근 글로벌 IT(정보통신)기업 IBM과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진보된 쇼핑 도우미 서비스 등의 개발에 나서고 VR기술을 유통 현장에 속속 적용하고 있다.
롯데는 지난해 말 한국IBM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IBM의 클라우드 기반 인지 컴퓨팅 기술 ‘왓슨’ 솔루션을 도입했다. 롯데가 왓슨의 고객 데이터 분석 등을 활용해 앞으로 개발할 서비스는 크게 ‘지능형 쇼핑 어드바이저’와 ‘지능형 의사결정 지원 플랫폼’ 두 가지다.

지능형 쇼핑 어드바이저는 사람과 대화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챗봇’ 앱으로 특히 백화점 등 유통 관련 계열사에서 응용된다. 이 서비스가 실제 유통현장에서 시행되면 고객들은 챗봇과 대화하며 상품을 추천받고 온라인 픽업(수령) 서비스 안내까지 받을 수 있다.
지능형 의사결정 지원 플랫폼은 제과 등 식품 계열사의 신제품 개발과 전략수립 등에 활용된다. 왓슨이 다양한 외부 시장 데이터와 내부 시스템 매출·제품 정보를 분석한 결과를 신사업 개발과 신상품 출시 등 의사결정을 앞두고 참고하는 것이다. 앞서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9월 본점 지하 1층에서 3D ‘가상 피팅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디지털 거울과 스마트폰을 활용, 옷을 직접 입어보지 않아도 입었을 때의 모습을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유통업계에서는 이처럼 첨단기술을 활용해 고객 편의를 향상시키는 획기적인 판매방법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호주의 마이어 백화점은 미국의 이베이와 협업으로 세계 최초의 ‘VR백화점’을 구현했고, 이와 유사한 서비스를 중국 알리바바의 ‘Buy+(바이 플러스)’와 현대백화점의 ‘VR스토어’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현대백화점은 ‘더현대닷컴’에 VR스토어는 물론이고, IOT사물인터넷, 스마트파인더를 도입했다. 이희준 현대백화점 e커머스사업부장은 “오프라인 유통과 IT를 융합해 새로운 쇼핑 경험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업계에서 처음으로 사물인터넷인 삼성 패밀리 허브 냉장고에도 더현대닷컴을 입점시켰다. 더현대닷컴은 삼성 패밀리 허브 냉장고에서 프리미엄 식료품과 화장품, 전자제품 등을 판매하고 백화점 할인 정보와 문화센터 강좌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를 앞두고 소비자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유통업체들이 순발력을 갖고 대응에 나서는 것은, 위기를 기회로 바꿔서 ‘4차 산업 르네상스’를 만들겠다는 움직임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 ICT에 기반 한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고 있다”며 “유통업계는 이런 메가트렌드에 철저하게 대비해 미래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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