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기원>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비열한 행동이고, 그 결과로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어리석은 판단이고, 내 인생까지 파멸로 몰아넣었다는 점에서 용서할 수 없는 죄였다.
-본문 중에서

매번 허를 찌르는 반전을 기대하게 만든 정유정 작가를 좋아한다. 특히 ‘악(惡)’에 관해 작가 특유의 해석이 내용 반전보다 더욱 놀랍고 어둡다. <종의기원>역시 악이 주체다. 전문가들은 ‘악’에 대한 시선을 집요하게 유지해온 <종의기원>에 이르러 ‘악’ 그 자체가 돼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정유정만의 독보적인 스타일로 ‘악’에 대한 한층 더 세련되고 깊이 있는 통찰을 선보였다는 평이다.
주인공 유진은 가족여행에서 사고로 아버지와 한 살 터울의 형을 잃은 후 정신과 의사인 이모가 처방해준 정체불명의 약을 매일 거르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주목받는 수영선수로 활약하던 열여섯 살에 반항심과 신체의 근본적인 거부로 약을 끊고 경기에 출전했다가 그 대가로 경기 도중 첫 번째 발작을 일으키고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한없이 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약과 늘 주눅 들게 하는 어머니의 철저한 규칙, 그리고 자신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듯한 기분 나쁜 이모의 감시 아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었던 유진은 가끔씩 약을 끊고 어머니 몰래 밤 외출을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왔다. 이번에도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을 며칠간 끊은 상태였고 그래서 전날 밤 개병이 도져 외출을 했었던 유진은 자리에 누워 곧 시작될 발작을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의 집에 양자로 들어와 형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해진의 전화를 받는다. 어젯밤부터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집에 별일 없는지 묻는 해진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유진은 피투성이인 방 안과, 마찬가지로 피범벅이 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핏자국을 따라, 아파트 복층에 있는 자기 방에서 나와 계단을 지나 거실로 내려온 유진은 끔찍하게 살해된 어머니의 시신을 보게 된다.
스포일러의 위험이 있어 포털사이트의 줄거리로 대신했다. 스릴러물은 허를 찌르는 반전이 묘미이니까.
책의 반전에 입을 벌리고 있을 무렵 작가가 주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생각했다. 단순히 이런 ‘악’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풀이할 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악인. 그리고 악을 키울 수 있는 환경, 이 두 가지를 배합한 악인은 얼마나 강력할까? 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미 악을 본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에게 억압과 강력한 규율이 적용된다는 것만으로 악의 근본을 막을 수 없을뿐더러 외려 악의 기운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경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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