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에서 유통까지 ‘혁명’ 예고

블록체인은 일명 공공 거래 장부라고 불린다. 말 그대로 여러 정보 블록들을 잇따라 연결한 구조인 블록체인에서 각 블록에는 단위 시간동안 거래된 내역이 기록된다. 거래의 모든 참여자는 블록체인 사본을 갖고 있어 하나의 거래에 대한 정보를 동시에 얻게 된다.
기존 금융회사들은 중앙집중형 서버에 거래 장부를 저장해 왔다. 블록체인은 장부를 거래 상대방이 모두 갖고 있도록 흩트려 놓는다. 해커들이 모든 장부를 위조하는 건 불가능해 보안성이 높다. 금융기관들이 블록체인 기술이 관심을 갖는 이유다.
또 블록체인의 ‘장부를 흩트려’ 놓은 기술이 금융거래뿐만 아니라 중앙집중형 서버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모든 거래들에 적용이 가능하다. 보안의 문제를 해결한 ‘힘의 분산’ 기술의 발견이다. 블록체인이 미래 세상의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로 떠오른 배경이다. 핀테크로 불리는 미래금융을 시작으로 생활 전반으로 확대될 블록체인의 혁명을 살펴봤다.

 

#예시1. 주부 A씨는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아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용돈을 보냈다. 예전엔 해외송금을 하는데 2~3일 정도가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 대부분 은행 송금시스템이 블록체인으로 묶이면서 실시간 송금이 가능해졌다. 4만∼5만원이었던 수수료도 절반 이하로 줄었다. 20만∼30만원의 소액을 송금해도 부담이 적어졌다.
#예시2. 회사원 B씨는 대통령선거 투표를 자신의 서재에서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정한 투표장소를 굳이 갈 필요가 없었다. 블록체인 덕분이다. 김씨의 투표 내용은 블록체인을 통해 암호화돼 해당 후보에게 전달됐다. 투표자 ID와 선택후보 ID를 담고 있는 각 데이터는 전 세계 누구에게나 공개돼 각 후보의 득표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블록체인을 이야기할 때면 온라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함께 거론된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중앙은행 없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나타난 지 10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100대 화폐 안에 들어갈 정도로 성장했다. 화폐가 인정받고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신뢰’가 있어야 한다. 1만원짜리 지폐가 1만원의 가치로 인정받아야 화폐 기능을 할 수 있다.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해킹의 위험성이 없이, 중앙시스템의 간섭 없이 개인 간의 거래를 통해서도 화폐로 인정받았다. 한마디로 ‘힘의 분산’을 이뤄낸 블록체인 기술이 있어서 가능했다.
비트코인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장부에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기록하며 신뢰를 확보한다.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여러 컴퓨터는 10분에 한 번씩 이 기록을 검증해 해킹을 막는다. 블록체인 기술의 원형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이병호 펀드온라인코리아 대표는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거래 해야 했던 거래구조를 비롯해 선거관리위원회, 각종 결제기관 등 중앙집중형 서버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일련의 상황들이 블록체인을 통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대표에 따르면 블록체인은 중앙 관리기관 없이 거래 당사자 간 거래가 가능하게 한다. 블록체인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분산원장’이다.
원장 자체를 거래 당사자에게 분산함으로써 당사자 간 거래시스템을 구현했다. 거래 당사자들은 각각의 거래에 고유의 번호를 갖고 있다. 각 거래기록은 연이어 생성되는 블록에 기록된다. 과거의 모든 거래정보가 기록된 블록에 새로운 거래기록이 생성될 때마다 새로운 블록이 이어진다. 중앙서버의 기능이 없어졌지만 거래기록을 모두 담고 있는 새로운 블록이 너무 많아서 해킹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보안에 대한 우려를 이 같은 방식으로 없앤 블록체인은 거래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거래를 중개하는 금융기관, 부동산 중개인 등 공인된 제 3자의 역할이 불필요해져 이에 따른 비용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금융거래 시 항상 부담했던 수수료, 금융기관 시스템 이용료가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은행간전기통신협회에서는 블록체인 시스템을 도입하면 금융업계에서 46조원 이상을 절감할 수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또 중앙 집중기관의 행정적 처리 없이도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은 거래 속도의 개선을 이뤄낸다.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 정보를 즉각 암호화해 거래 상대방에게 전달해 소요시간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비트코인 경험 금융, 블록체인 기술 도입 서둘러
이 같은 미래 전망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블록체인 기술 도입에 바빠졌다. 세계경제포럼은 지난 8월 1년 이내 전 세계 은행의 80%가 블록체인을 도입할 것이라고 전망했을 정도다. 국내 은행들도 개발에 나서고 있다. 신한은행 등 국내 주요 시중은행은 핀테크 업체들과 손잡고 해외송금 모델을 연구 중이다. 현재까지 블록체인을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모델은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거래 상대방끼리 장부를 모두 공유하기 때문에 본인 인증과 송금 절차가 간편하다. 은행이나 신용카드 회사 같은 중앙집중적인 조직 없이 사용자끼리 가치를 주고받을 수 있다.
‘37코인스’는 은행이나 송금회사가 진출하지 않은 저개발 국가에서도 휴대폰 문자메시지(SMS)만으로 비트코인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술을 선보이는 등 저변 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중앙집중적인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도 사용자들끼리 안심하고 해외 송금을 하고, 수수료가 들지 않는다.
비트코인을 이용한 해외 송금에서 이용자가 원금 그대로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웨스트유니언 같은 국제 송금 서비스에서 보통 송금액 가운데 10% 정도를 가져가는 수수료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나라일수록 위험성이 커진다는 이유로 수수료가 비싸지는 점을 고려하면 저개발 국가에서 비트코인을 이용하면 그만큼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국내에도 비트코인을 통한 해외 송금이 가능하다. 다만 정부는 비트코인을 이용한 송금 거래 등에 불법 외환거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국내 시중은행에서 비트코인 방식의 블록체인을 활용한 송금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거래가 블록체인 기술로 해킹 등에도 안전하다는 것이 대내외적인 인정을 받으면서 금융위원회는 최근 태스크포스 회의를 열고, 내년 상반기 중에 우선 비트코인 거래소 등록제 등의 방안을 마련하기로 하는 등 국내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의 도입이 금융권을 중심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물론 비트코인 활성화 추진에 우려는 존재한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미래금융연구센터장 같은 이는 수직적 계열화와 중앙 집중 방식의 소유·지배 구조 하에서는 개발을 주도해야할 민간의 역할이 애매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비트코인과 같은 블록체인 기술은 기본적으로 ‘힘의 분산’을 기반으로 하는데, 기술 개발 자체에 앞서 우리나라에서 만연한 칸막이식 법규와 조직문화를 탈피가 먼저 이뤄져야하기 때문이다. 최 센터장은 “블록체인의 개발 주체는 참신한 민간이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문제는 이를 선도하려는 금융사나 개발회사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고 자체적 기반도 취약하다는 점이다. 민간의 기반이 취약하다보니 이들 간의 자발적 협업은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
최 센터장은 “시장역량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갈 수 없는 추진 주체들이 컨소시엄을 주도할 경우 원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면서 “이미 우리의 폐쇄적 금융생태계는 기존의 유관기관들의 입장이 우선시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블록체인 ‘공유경제’ 개념, 유통업 혁신도 기대
블록체인은 금융권에서 기존의 금융생태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기술로 평가받고 있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블록체인의 분산장부 방식, 참여형 가치사슬방식의 기술은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실제로 블록체인은 핀테크로 불리는 금융의 변혁 기술을 넘어서 앞으로 전 산업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포츈지는 이 같은 주장을 담은 ‘블록체인 기술이 번창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칼럼을 최근 게재했다. 이 칼럼에서 포츈지는 P2P 공유경제 창조, 금융시스템 통합에 따른 신속성 향상, 크리에이터 공급 가능, 사람에 좌우되는 정부 등이 블록체인으로 구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칼럼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블록체인은 ‘공유경제’라는 개념으로 기존 산업을 재창조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택시 등 운수사업, 심부름센터·가사도우미 업종 등이 스마트폰, GPS 등의 장비를 업고 카셰어링, O2O사업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분리형 보안시스템인 블록체인은 기존 중앙집중식 보안시스템 기반 금융서비스와 달리, 금융상품 구입과 대출, 판매 등의 서비스 통합을 보다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다. 또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한 개인이 은행·회계법인·신용카드 네트워크·부동산 에이전트 등의 서비스를 하나의 금융서비스로 이용할 수 있다.

아울러 블록체인은 금융거래뿐 아니라 온라인 유통시스템도 혁신, 작곡가·디자이너 등 크리에이터들의 적절한 보상 체계를 만든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유통 대기업들의 규제를 벗어나 P2P 플랫폼을 활용한 가치 거래를 확대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은 블록체인이 생산과 소비간의 기존 거래 양식을 변화시킬 수 있어 유통의 혁신을 앞당길 것이라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유통에서의 혁신은 일차적으로 거래의 편의성 증대에서 올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은 개방적인 기술의 출현을 의미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참여하는 공유형 경제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면 기존 영업방식에 근본적 변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 기술의 발달과 함께 유통에서도 소위 직거래 방식의 발전이 있어왔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은 생산과 소비 사이에 있는 수많은 중개업자들을 거치지 않는 혁신적인 직거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소위 스마트 계약을 통한 거래가 가능해지게 된다. 스마트 계약이란 분산장부시스템의 기반 위에서 제공되는 새로운 전달 프로토콜을 말한다. 모든 계약을 중간단계 없이 계약의 확인, 이행, 위반 등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프로그램을 자율적 이행하게 되는 만큼 다양한 해석을 낳을 소지가 없으며, 실시간으로 감사가 가능하다.
기존 계약은 서면 계약으로 이해 당사자들의 관계가 개입해 처벌 조항이나 계약 문구에 대한 해석으로 법정분쟁 소지가 있다. 또 감사를 하려면 데이터 수집 등 번거로운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블록체인을 통한 분산장부기술은 현존시스템과 과정에 대한 혁신을 촉진시키면서 다양한 발전단계를 거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감귤을 서울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구매하려는 소매패턴을 가정해 보자. 이전까지는 감귤 생산 농민과 대형마트 상품담당자간의 거래를 거쳐, 배송된 제품을 진열하고 소비자가 대형마트에 와서 구매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소비자들은 감귤의 신선도나 맛, 그리고 가격 책정에 있어서 대형마트의 역할을 신뢰한다는 전제에서 구매를 결심하고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활성화되면 소비자들은 직접 감귤 농장에서 상품을 주문하고 가격도 흥정해서 바로 구매를 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생산자와 소비자간 ‘신뢰’를 블록체인의 분산장부기술을 통해서 구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공급자 세계부터 매장 선반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비자에게까지 식품을 디지털 방식으로 추적할 수 있게 만든다. 이로써 식품이 농장 원산지 정보, 배치 번호, 공장 및 가공 데이터, 유통기한, 보관 온도, 운송 세부 사항을 포함해 디지털 제품 정보와 디지털로 연결되게 된다.
공급자가 소비자에게 식품을 인도하는 과정의 단계마다 관련 정보가 블록체인에 입력된다. 각 거래의 정보를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모든 구성원이 합의하게 되며, 합의가 이뤄진 후에는 변경할 수 없는 영구적인 기록으로 자리 잡는다. 이는 물품에 관한 모든 정보가 정확한지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감귤의 신선도는 물론 가격 정보까지도 여러 사람들의 합의된 정보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직거래에 따르는 신뢰의 위험도가 그만큼 낮아져 안전하고 저렴한 구매가 가능한 셈이다.
세계적인 유통기업인 월마트가 IBM과 협업해 중국 내 안전한 식품 거래에 블록체인을 활용하려는 시도도 이 같은 가능성에 기반 한다.

월마트는 IBM의 기술을 활용해 공급망에서 식품 인증 및 기록 보존을 위한 블록체인을 시범 운영해 모든 거래의 기록을 영구적으로 제공하려고 하고 있다. 현재 시범 프로젝트로 월마트와 IBM은 공급자로부터 월마트 매장 진열대까지 이동하는 돼지고기를 추적하는 시험을 진행 중이다.
개념은 비교적 간단하다. 월마트의 매장에서 식품이 소비자에게 판매될 때까지 개별 물품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인증을 받아 투명하고 안전하며 추적 가능한 기록을 생성한다. 블록체인이 생성한 기록은 월마트 등의 소매기업이 각 매장에서 제품의 보관 수명을 더 잘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과정에서 식품 인증과 관련된 보호 장치도 강화한다.
월마트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더 효과적인 식품 추적 솔루션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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